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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임금이 활 쏜 후에 손 씻은 연못

2001-05-15 1999년 5월호

"여기요? 임금님이 목욕했던 곳이래요."

"그게 아니구요, 그냥 손만 씻었던 곳이에요."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욕은지가 뭐했던 곳이냐'고 물었더니 서넛이 아는 체를 하며 나선다.

욕은지는 계양구 계산동에 있는 부평초등학교 교정 동쪽, 부평도호부 청사 건물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는 지금의 자리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고종 24년(1887년)에 이전하며 보수한 것이라고 전한다.

동서 길이 15.3m, 남북 길이 12.9m 가량 되는 네모꼴의 인공연못으로, 그 가운데에 둘레 7m 정도 의 둥근모양의 인공섬을 만들어 남측변과 돌다리를 놓아 연결시켰다.

 

연못이라는 얘기를 듣고 연꽃이라도 떠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욕은지를 찾으면 실망하기 쉽다. 평상시에는 바닥을 드러내놓고 있어 연못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아쉬운 대로 비가 내린 직후잠시나마 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욕은지는 인조가 그의 생부 원종을 모신 김포 장릉을 참배할 때 부평에 들러서 활을 쏘고 이 연못에서 손을 씻었다(발을 씻었다는 설과 목욕재계했다는 설이 있다)는 곳이다.

활을 쏘았다는 곳은 '어사대(御射臺)'라고 명명돼서 현재 시 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돼 있다. 옛날에는 근처에 정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없고 욕은지 뒷 편 한구석에 '어사대 광서정해중수 (御射臺 光緖丁亥重修)'라고 새겨진 돌이 덩그마니 세워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곳을 들른 왕이 과연 인조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선친의 묘를 양주에서 김포로 옮긴다. 그런데 기록을 볼 때 그가 장릉을 찾은 것은 인조 7년 9월 하순경, 단 한 차례뿐이다.

그 날 밤에는 늦가을 비가 내려 왕을 호위하던 백관과 병사들은 추위에 떨었다고 한다. 이러한 때에 우회로인 부평길을 택했다는 것과 중도에 한가롭게 활을 쏘았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날씨에 왕이 노천에서 목욕을 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정조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수원 현륭원을 1년에 한 차례씩 찾았다.

정조 21년(1797) 8월 15일, 이날 행차코스는 김포-부평-안산-수원으로 잡았다. 정조는 먼저 김포장릉을 들르고 다음날 부평에 도착해 부사 윤광석을 접견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수원으로 향했다고 한다. 기록은 여기서 그치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

정조는 활쏘기를 즐겼기 때문에 부평에서 점심수라를 들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어사대에서 활시위를 당기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곳 연못에 손을 잠시 담궜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찾아가는 길
부평역에서 대우자동차를 지나 부평로 끝에 다다르면 서구청과 계산동으로 향하는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편에 있는 주유소 뒤로 가면 부평초등학교가 있다. 운동장 끝에 도호부청사 모습이 보이는데 그 앞에 욕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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