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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령' 철종이 농사지으며 살던 집
이어 그를 왕으로 삼는 교지가 내려지고 더벅머리 총각 원범은 서울로 모셔진다. 그가 바로 '강화도령'으로 널리 알려진 조선 제 25대 왕인 철종이다. 그는 1831년(순조31) 전계대원군 이광과 용성부대부인 염씨의 셋째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할아버지가 사도세자이고, 할아버지는 사도세자와 궁녀 사이의 소생인 은언군(정조의 아우)이다. 원범이 왜 강화도에서 살게 되었을까. 그의 할아버지 은언군은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영조의 미움을 받아 제주도에 유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정조 때 정치적인 사건에 얽히게 되어 강화도로 유배왔고 결국 순조 때 죽임을 당한다.
아버지 전계대원군도 이런 분위기에 자유롭지 못하다가 원범이 14살 되던 해에 한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전 가족을 데리고 교동을 거쳐 강화도에 쫓겨와서 살게 되었다. 그후 부모와 첫째 형(원경)을 잃고 둘째 형(경응)과 함께 졸지에 천애의 고아로 남게 된 원범은 농사를 짓고 산에서 나무를 하며 농군으로 곤궁하게 살았다.
영의정 정원용이 교지를 받들고 병졸들과 함께 바다를 건너 강화도로 왔을 때 원범은 자신을 잡으러 온 줄로 알고 산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왕족들은 세도정치가들이 권력을 잡고있던 그 당시의 분위기 상 언제 자신들에게 불행이 들이닥칠지 모를 위태로움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동네 사람들이 산에서 그를 겨우 찾아냈고 서둘러 서울로 모셔졌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이미 둘째 형 경응은 강화도에서 병으로 죽지 않았나 추측된다. 19세에 즉위한 철종은 세도정치 세력들 사이에서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1863년 12월 8일 재위 14년 만인 33세의 젊은 나이로 생애를 마감한다.
용흥궁(龍興宮)은 원범이 왕으로 등극하기 전에 살던 집이다. 후에 왕좌에 오름으로서 그곳은 '용이 일어난 궁'이라는 의미의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약 5년 간 살던 용흥궁은 원래 초가삼간의 볼품없던 집이었으나 1853년(철종4) 강화 유수 정기세가 주변의 집들을 사들여 기와집으로 확대 개축하였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안채와 정면 6칸, 측면 2칸의 바깥채와 그 행랑채 등을 지었다. 철종이 살던 바로 그 자리를 확인하는 '철종조잠저구기(哲宗朝潛邸舊基)'라고 새겨진 비석과 비각을 세웠다. 그후 1903년에 이재순 이라는 사람이 한 차례 중건하고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띠고 있다.
몇 차례에 걸쳐 규모를 늘리는 작업을 했다고 하나 용흥궁에서 웅장함이나 화려함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좁은 골목 안에서 곤궁하고 비참하게 살던 철종의 처지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 초라함에서 당시 막강한 힘을 휘둘렀던 세도정치가들과 그들 틈 속에 힘없이 앉아 있는 왕의 모습이 오버랩 되곤 한다.
<찾아가는 길>
강화대교를 지나 강화읍으로 들어간 후 군청과 경찰서 앞길을 거친다. 한빛은행을 통과하여 조금 더 앞으로 진행하면 우측으로 고려궁지(표지판) 오르는 길이 나온다. 길 오른편에 '김상용선생순의비'가 세워진 골목길로 100미터 정도 가면 고택(古宅)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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