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대원군이 세월을 기다리며 머물던 천년고찰
용궁사는 영종도의 주산(主山) 백운산(해발 258m) 기슭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용궁(龍宮)'이란 이름과는 달리 절은 웅장하지는 않지만 케케묵은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고찰이다.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백운사라고 칭했으며 이후 구담사라고도 불리었다.
현재의 용궁사란 이름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철종5년(1854)에 이 절을 대대적으로 수리한 후에 붙인 것이다.
지금도 요사채에는 그가 직접 쓴 '龍宮寺'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대원군은 자신의 아들이 용상에 오르기 전 까지는 세도정치의 풍랑 속에서 몸을 드러내 놓지 않고 철저히 죽어 살았다. 이런 연유로 바닷길을 건너 산 속에 있는 이 절에 한동안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여기서 때를 기다리며 아들의 등극을 부처에게 지성을 다해 빌었을 것이다.
그는 절을 고치면서 관음전에 유사시 자신의 몸을 피할 수 있는 은신처로 다락방을 마련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그 흔적을 볼 수가 없다. 용궁사 경내에는 관음전, 요사채, 용황각, 칠성각 그리고 11m 높이의 미륵불이 있다. 1884년에 건립된 관음전에는 옥석으로 된 관음상이 봉안돼 있었으나 일제 때 도난 당하고 현재는 고풍의 후불탱화를 배경으로 한 관음상이 걸려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 크기의 요사채는 맞배지붕 홀처마의 일반 한옥집 형태로 쩍쩍 틈이 갈라진 기둥만이 230년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 하다.
용궁사가 천년고찰이라는 연륜을 얘기해주는 증거물이 절 마당에 우뚝 서있다. 약 1,300년의 나이로 추정되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세월의 무게가 힘에 겨운 듯 굵은 가지를 쇠파이프에 의지하고 사찰을 굽어보고 있다. 요사채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할아버지 나무, 왼쪽에 할머니 나무 한 쌍이 다정스럽게 천년해로 하고 있다.
천년 풍상을 보낸 이 한 쌍의 노거수(老巨樹)는 예외 없이 전설 하나를 품고 있다. 옛날 할아버지 나무가 조금 젊었을 적에 그 나무가지가 이상하게도 할머니 나무쪽으로만 뻗어나가는 것을 보고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인들이 용황각의 약수물을 마시고 할아버지 나무에 절을 하고 기원하면 아기를 낳았다고 한다. 아직도 봄만 되면 두 느티나무는 나이를 잊은 듯 황갈색 꽃을 활짝 피우는데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동시에 핀다.
지금도 어느 여인이 그 효험을 얻으려 했는지 느티나무 아래에는 예불에 썼음직한 제기들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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