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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갓 쓰고 도포 입은 그리스도의 형상

2001-05-21 2000년 12월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예배당인 성공회 강화성당에 다다르면 마치 사찰이나 향교에 온 느낌을 받는다. 태극무늬가 그려진 솟을대문 형태의 외삼문을 지나면 팔작지붕을 얹은 내삼문이 나온다.

외삼문은 기와지붕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고 사찰의 천왕문을 닮은 내삼문에는 범종을 달아놓은 종각이 있다. 석가모니가 그 밑에서 해탈을 했다는 한 쌍의 보리수나무가 마당 한켠에 심어져 있고 왼편 뜰에는 옛날부터 향교에 심어져 선비나무라고 불리던 회화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다.

단청으로 처리된 서까래, 지붕 내림마루에 올라앉은 용머리, 들보 끝 부분의 연꽃 무늬 그리고 다섯 개 기둥에 걸려 있는 쉰 다섯 글자의 한문 문장. 게다가 정면 한가운데 걸려있는 '천주성전((天主聖殿)'이라고 쓰여있는 현판 등은 언뜻 보면 사찰의 대웅보전(大雄寶殿)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성당임을 말해주는 것은 지붕 꼭대기에 세워진 십자가뿐이다. 그러나 정면 4칸, 측면 10칸 짜리 건물의 내부공간은 서구의 중세초기 전형적인 로마 가톨릭의 바실리카 양식을 취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층 구조인데 안에서 보면 가운데 부분이 툭 터져 솟아 오른 통층 형태다. 사방이 유리창으로 개방돼 있어 언제나 '빛줄기'가 TM며든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한마디로 갓 쓰고 도포입은 예수님의 형국으로 서양 기독교문명과 한국 전통문화의 만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역사적 건축물이다.

요즘말로 '퓨전(fusion)'스타일인 셈이다. 강화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견자산 언덕마루에 자리잡고 있는 강화성당은 올해로 꼭 축성 100돌이 된다. 후에 한국교구 3대 주교가 되는 마크 트롤로프(한국명 조마가) 신부가 건축을 시작해 일년만인 1900년 11월 15일 준공했다.

백두산 원시림 적송 목재와 강화도 산 기와와 석재를 사용했는데 목수 일은 경복궁 공사에 참여했던 도목수들이 맡았고 축대 공사 등은 중국인 석공들이 시공했다고 한다.

건평 70평에 전체 터 1,000평 규모의 성당부지는 본관 건물과 뒷편의 사제관 등의 배치가 전체적으로 배(舟)모양을 하고 있다. 한 세기 전부터 강화성당은 배와 어부들이 많은 강화도에서 구원의 방주(方舟) 역할을 자임하며 민중(民衆)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성공회는 로마 가톨릭도 아니고 일반 프로테스탄(개신교)도 아닌 중간 위치에 있는 교회로 영국교회라고도 한다.

헨리8세가 1534년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하고 종교개혁 후 완전분리되었다.

1884년 한영통상조약 체결 이후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는데 이 땅의 첫 교회가 바로 인천 내동교회이다. 강화 선교는 1893년 7월, 워너(한국명 왕란도) 신부가 갑곶리에 집 한 채를 세 내어 빌린 후 전도 활동을 펴면서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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