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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봉씨의 탄생 설화 깃든 돌 제단

2002-03-29 2002년 4월호

 

   물길이 산길을 끊어 버렸다. 해발 291m 밖에 되지 않는 산인데도 정상에 서니 앞이 훤하다. 강화도 북단에 있는 봉천산 꼭대기에 오르면 임진강과 예성강 그리고 송학산 등 북녘 땅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방이 탁 트인 정상에는 꼭지 부분이 잘려 나간 피라미드처럼 생긴 돌 제단이 하늘과 맞닿을 것처럼 봉긋 솟아 있다. 봉천대이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예종(1105∼1122) 때 어느 할머니가 물을 길으려고 하점면 부근리에 있는 연못(봉가지·奉哥池)에 갔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일고 번개가 치더니 웅덩이 가운데서 돌로 만든 상자가 하나 떠올랐다. 열어보니 비단보에 쌓인 옥동자가 있었다. 노파는 이를 신기하게 여겨 임금에게 바쳤다. 왕은 어린 아기를 우(佑)라 이름짓고 궁중에서 잘 길렀다. 우는 자라서 장원급제하고 정승의 자리에 올라 백성을 잘 다스렸다. 왕은 우에게 봉(奉)씨 성을 내렸다. 이가 곧 하음 봉씨(河陰 奉氏)의 선조이다.
   평창사라는 벼슬을 지낸 5대손 봉천우가 조상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 바로 봉천대이다. 자연석으로 높이 5.5m 밑넓이 7.2㎡로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쌓은 조형물이다.    
   강화 역사책 <강도지>에 의하면 봉천대는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쓰인 것 외에 고려 때는 축리소(祝籬所)로서 국가차원의 제천의식을 행하였다. 조선조 중엽에 들어와서는 그 쓰임새가 더 다양해진다. ‘동으로 송악산에 응하고 서로는 교동도의 화개산에 응한다’는 덕분에 봉천대는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불을 피워 연락을 취하는 봉수대로 사용됐다.
   봉천산 근처에는 ‘봉(奉)’자 돌림의 유적이 하나 더 있다. 봉천우는 산꼭대기에 돌 제단을 쌓은 것에 그치지 않고 산기슭에 봉은사(奉恩寺)라는 절을 지었다. 몽고군의 말발굽을 피해 강화도로 피신해 있던 고종이 몇 차례 연등회를 개최할 만큼 절은 번창했다. 지금은 5층 석탑(보물 제10호)이 천년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을 뿐 절터에는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찾아가는 길 _ 강화읍을 지나 서문 삼거리에서 송해면 쪽으로 직진한다. 송해 삼거리를 지나 하점면사무소에 다다르면 이곳부터 등산길이다. 봉천산 정상까지는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3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장정리 부락에 있는 5층 석탑 뒤쪽으로도 오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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