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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국난이긴 기개의 땅에서 잃은 기개 재충전

2001-05-21 1998년 6월호

국난 이긴 기개의 땅에서 '잃은 기개' 재충전

 

새로 난 강화대교를 건너 닿게 되는 강화도는 30여년전만해도 나룻배로 건너야 했던 섬이다. 이제는 눈깜짝할새 '안전'하게 건너지만 예전엔 '목숨'걸고 건넜다. 강화해협에 여기저기 솟아있는 암초들과 소용돌이가 늘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강화도는 숨어있기 좋은 '한반도의 요새' 였다.

허나 반대로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외세의 침입이 끊이질 않기도 했다. 한강·임진강·예성강이 강화앞바다에서 몸을 합쳤고, 그길로 한강을 거슬러 오르면 곧장 서울이다. 그러니 강화를 잃으면 나라를 잃는 것이고 강화를 지키면 곧 구국이었다.

고려때부터 구한말까지 항쟁의 본거지로, 개항을 요구하는 외세를 막아낸 최전선으로 자리매김해온 강화의 운명은 오늘 우리 후손들에게 많은 국방유적과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선조들의 호국의지가 충만한 기개의 땅 강화, 그곳에서 국난극복 의지를 배워와 지금 우리가 처한 난국을 돌파해보자. 호국의 달 6월에.

 

강화해협 지켜준 외성, 갑곶돈대

강화에 입성하자마자 가장 먼저 가닿는 유적지가 갑곶돈대(사적306호)다.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강화의 어제와 오늘을 볼 수 있는 강화역사관 바로 위쪽으로 있다.

몽고의 침입을 피해 고려가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것이 1232년. 이때부터 1270년 다시 환도하기까지 갑곶돈대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였다.

그로부터 한참 후, 병인양요(1866년)가 일어났다. 이때 프랑스 로즈제독이 6백여명의 연합함대를 이끌고 이곳에 상륙했다. 35일간 머무르며 약탈을 일삼다 조선군의 반격으로 패주할 때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또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고 인천을 포함해 부산·원산등 3항을 개항하게 된 곳도 여기다.

돈대에서 바라보는 강화해협은 깊고 푸르다. 홍이포라 불리는 대포와 팔각정자인 이섭정이 근방에 있다.

마지막 격전지, 광성보

"미국의 남북전쟁에서도 이렇게 좁은 지역에서 48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그토록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적이 없다."

신미양요(1871년)때 참전했던 미해군장교 브레이크 중령의 전사기록을 보면 그때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 현장이 광성보(사적 227호)다.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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