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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오솔길 따라 피어나는 역사의 향기

2001-05-23 1998년 11월호

 

승학산은 남구 관교동과 주안8동에 걸쳐있는 해발 55미터의 야트막한 산이다. 관아가 있는 읍의 뒷산이라 해서 한때 '아후산(衙後山)'이라고도 불렀다.

앞쪽에 버티고 있는 인천의 진산(鎭山) 문학산에 뭍혀 사람들은 그 산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나 '주안 예비군교육장' 하면 그때서야 '아~하~'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높이나 규모 면에서 산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승학산은 그 가슴에 인천의 뿌리를 품고 있는 산이다. 관청마을과 향교마을이 있던(그래서 지금의 동네이름이 관교동이다) 옛 인천의 중심지였다.


승학산을 오르는 길은 인천(문학)향교 쪽과 신비마을 아파트 뒷편 그리고 학익동 방면 등으로 나있다. 역사기행과 산행을 동시에 즐기기 위해선 인천향교 쪽으로 오르는 것이 좋다.

인천향교는 시 유형문화재 11호로 지정돼 있다. 언제 건립됐는지 확인할 수 없으나 조선 세조 이전에 설립된 것으로 추측한다.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옛 성현들의 제사와 지방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 역할을 했다.

문학로(인천종합터미널-학익동 신동아아파트) 길가에 붉은 홍살문이 높이 세워져 있어 인천향교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홍살문 왼편에는 역대 부사들의 선정을 기린 송덕비가 줄지어 서있다.

계단을 올라 커다란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명륜당(明倫堂)이 눈앞에 나타난다. 일종의 강당으로 유생들이 함께 모여 학문을 배우고 논했던 글방이다. 남으로 난 들창을 열어 제끼면 문학산의 풍광이 방안 가득히 들어온다.

마당을 중심으로 중앙에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大成殿)과 좌우에 유생들의 숙소인 동재(東齋) 서재(西齋)가 자리잡고 있다. 인천향교는 조선조 선비들의 기상이 누대에 걸쳐 쌓여 있는 정신적 공간이자 인천지방의 인재를 길러 온 상아탑이기도 하다.

 

 

이곳 저곳 둘러보다 보면 금방이라도 댕기머리를 한 학동이 격자문을 열어 빠꼼히 얼굴을 내밀며 반길 것 같다. 한학에 조예가 있는 부모라면 곳곳에 씌여진 한문을 읽어가며 자녀들에게 한자실력을 뽐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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