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소래, 그 삶과 추억이 ‘접속’하는…
2001-05-29 1997년 11월호
소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낭만파다. 그런데 의외다. 당나나 소정방이 왔다는 뜻이라는 좀 싱거운 사연을 품었다. 그곳을 찾아가는 길엔 도시의 때국물을 벗은 산길이 꾸불꾸불 이어진다. 이런 길맛 때문에 떠나는 것이라고, 계속 이런 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無렵이면 어디선가 비릿한 바다내음이 날 것이다. 그때 불쑥 번화가가 길을 막고 선다. 설마… 그러나 안타깝게(?) 그곳이 소래다. 만약 호젓한 어촌마을을 머리속에 스케치하며 왔다면 그런 소개가 다소 황당하리라. 시내에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모습으로 소래는 번듯하게 서 있다.
사람… 언제부터 소래엔 그들이 모여살기 시작했을까. 소래에 염전이 들어선건 1933년이다. 4년뒤, 일제는 이곳 소래와 남동 등 염전과 이천, 여주등 곡창지대에서 나는 소금과 쌀ㅇ르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내가기 위해 철로를 놓았다. 비극의 역사를 싣고 협궤열차가 뒤뚱뒤뚱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촌락이 만들어진 곳이 소래다.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인천항이 준공(1974년)된 뒤 새우잡이 어선들이 인천항 大신 소래포구를 이용하면서부터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몰려들고, <새우파시>로 소래는 다시 태어난다.
11월… 한해 중 소래는 이참이 제일 바쁘다. 김장철이 시작되는 탓이다. 뭐니뭐니 해도 ‘소래’하면 ‘새우젓’이다. 새우젓의 재료가 되는 잔 새우나 김장에 생으로 버무려 넣는 생새우는 김치에 빠져서는 안되는 양념이다. 그래서일까. 소래는 살림솜씨가 노련한 주부들이 더 잘 안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유별나지 않다. 촐어해서 그날로 잡아온 것을 바로 풀기 때문에 예사 시장에서 만나는 그것과는 비교가 안되기 때문이다. 펄쩍펄쩍 살아뛰는 각종 활어와 새우를 만나는 기쁨이란… 살림의 지혜를 아는 주부만이 그 맛을 안다. 그들의 발길로 소래는 늘 퇴근시간의 인천행 지하철1호선같다. 요즘 같은 평일에도 하루평균 1만여명이 넘게 이곳을 찾는다. 어 시장은 사람체증으로 몸살을 앓는다. 허나 기분좋은 몸살 기운이다.
시장… 소래의 심장은 물량장(소래포구어시장)이다. 그물에 담긴 고기를 내려 손질할 수 있는 곳이란 뜻이다. 7~8년전만해도 소래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곳 특산물인 새우와 게밖에 없었다. 그땐 선주와 손님이 직접 고기를 사고 팔았다. 여름이나 한겨울엔 파리만 날렸다. 하지만 지금은 사시사철 풀가동하는 전천후 시장이 됐다. 올 초 깔끔하게도 단장도 했다. 어시장 가장자리로는 노천레스토랑(?)이 길게 늘어섰다. 大형 플라스틱 소투리를 엎어 놓은 것이 테이블이요, 목욕탕에서나 쓰는 앉은뱅이 의자가 자리의 전부다. 거기서 소래의 회맛을 볼 일이다. 저녁노을보다 붉어진 얼굴을 소줏잔에 비춰보는 것도 괜찮겠다. 평일에도 한 십분은 기다려야 회라도 한접시 얻어먹을 수 있을 만큼 북새통이다. 잔칫집 마당같다. ‘자연산 해물 허벌나게 드린다.’는 허벌난 그곳의 인심이 맛깔스럽다.
어부… 물량장이 소래의 심장이라면 어부들은 심장을 뛰게 하는 피같은 존재다. 소래를 활어처럼 싱싱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 몫이다. 차츰 그 숫자가 줄고 있어 걱정이다. 280여척의 배가 출항할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180여척정도다. 그나마 지난해보다 좀 낫단다. ‘지겨원 다시는 배를 안탄다고 시내로 나갔던 뱃꾼들이 올해 다시 수십명이 되돌아왔기 때문’이라는게 토박이 김용희(45세, 상인번영회회장)씨 말이다. 소래에 몸을 기대고 사는 건 이들 뿐만 아니다. 어부와 어시
사람… 언제부터 소래엔 그들이 모여살기 시작했을까. 소래에 염전이 들어선건 1933년이다. 4년뒤, 일제는 이곳 소래와 남동 등 염전과 이천, 여주등 곡창지대에서 나는 소금과 쌀ㅇ르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내가기 위해 철로를 놓았다. 비극의 역사를 싣고 협궤열차가 뒤뚱뒤뚱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촌락이 만들어진 곳이 소래다.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인천항이 준공(1974년)된 뒤 새우잡이 어선들이 인천항 大신 소래포구를 이용하면서부터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몰려들고, <새우파시>로 소래는 다시 태어난다.
11월… 한해 중 소래는 이참이 제일 바쁘다. 김장철이 시작되는 탓이다. 뭐니뭐니 해도 ‘소래’하면 ‘새우젓’이다. 새우젓의 재료가 되는 잔 새우나 김장에 생으로 버무려 넣는 생새우는 김치에 빠져서는 안되는 양념이다. 그래서일까. 소래는 살림솜씨가 노련한 주부들이 더 잘 안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유별나지 않다. 촐어해서 그날로 잡아온 것을 바로 풀기 때문에 예사 시장에서 만나는 그것과는 비교가 안되기 때문이다. 펄쩍펄쩍 살아뛰는 각종 활어와 새우를 만나는 기쁨이란… 살림의 지혜를 아는 주부만이 그 맛을 안다. 그들의 발길로 소래는 늘 퇴근시간의 인천행 지하철1호선같다. 요즘 같은 평일에도 하루평균 1만여명이 넘게 이곳을 찾는다. 어 시장은 사람체증으로 몸살을 앓는다. 허나 기분좋은 몸살 기운이다.
시장… 소래의 심장은 물량장(소래포구어시장)이다. 그물에 담긴 고기를 내려 손질할 수 있는 곳이란 뜻이다. 7~8년전만해도 소래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곳 특산물인 새우와 게밖에 없었다. 그땐 선주와 손님이 직접 고기를 사고 팔았다. 여름이나 한겨울엔 파리만 날렸다. 하지만 지금은 사시사철 풀가동하는 전천후 시장이 됐다. 올 초 깔끔하게도 단장도 했다. 어시장 가장자리로는 노천레스토랑(?)이 길게 늘어섰다. 大형 플라스틱 소투리를 엎어 놓은 것이 테이블이요, 목욕탕에서나 쓰는 앉은뱅이 의자가 자리의 전부다. 거기서 소래의 회맛을 볼 일이다. 저녁노을보다 붉어진 얼굴을 소줏잔에 비춰보는 것도 괜찮겠다. 평일에도 한 십분은 기다려야 회라도 한접시 얻어먹을 수 있을 만큼 북새통이다. 잔칫집 마당같다. ‘자연산 해물 허벌나게 드린다.’는 허벌난 그곳의 인심이 맛깔스럽다.
어부… 물량장이 소래의 심장이라면 어부들은 심장을 뛰게 하는 피같은 존재다. 소래를 활어처럼 싱싱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 몫이다. 차츰 그 숫자가 줄고 있어 걱정이다. 280여척의 배가 출항할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180여척정도다. 그나마 지난해보다 좀 낫단다. ‘지겨원 다시는 배를 안탄다고 시내로 나갔던 뱃꾼들이 올해 다시 수십명이 되돌아왔기 때문’이라는게 토박이 김용희(45세, 상인번영회회장)씨 말이다. 소래에 몸을 기대고 사는 건 이들 뿐만 아니다. 어부와 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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