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100년 풍상 견뎌온 등대부터 장군의 묘지까지
팔미도 등대 시 유형문화재 제40호·중구 무의동 산 375번지
인천항 남쪽 14.8㎞ 지점에 외로이 떠있는 팔미도. 해발 71m 섬 꼭대기에 높이 7.9m, 지름 2m의 원형 등대가 선박들의 뱃길을 지키고 있다.
팔미도 등대의 탄생은 1894년 공무아문에 등대국을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1902년 5월 인천의 팔미도, 소월미도, 북장자서, 백암 등 4곳에 등대건설이 착수됐고 1903년 6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 등대에 불이 밝혀졌다.
팔미도 등대는 1954년 9월 자가발전시설을 갖추고 백열등으로 밝히기 전까지 석유등에 불을 붙여 인천 앞바다를 지나는 배들의 길잡이를 했다. 그후 등대는 수은등으로 촉광이 뛰어난 할로겐을 거쳐 지금은 태양에너지를 보관했다가 이용하는 태양광 발전장치에 의해 불을 밝히고 있다.
팔미도 등대는 지정학적으로는 인천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해 해상교통의 중심적인 기능을 담당했고, 역사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점등된 등대로서 항로표시의 효시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강화온수리 성공회 사제관 시 유형문화재 제41호·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505-7
사단법인 대한성공회 유지재단에서 소유하고 있는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의 상공회 사제관은 1898년에 마가 트롤프신부 등이 강화에 부임해 선교와 의료활동을 시작하면서 건립되었다.
건물형식은 ‘ㄷ’자형 연와구조의 한옥건물로 5량 4칸의 홑집이고 건물의 배치는 ‘상의 공간’인 교회와 ‘하의 공간’인 사제관이 분화된 개념으로 배치돼 위계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건물 지붕 4귀에 합각(合閣지)붕을 얹어 독특한 양식을 이루고 있어 눈에 띈다. 또 천정은 구조미를 살리기 위해 노출시키고 목재의 질박한 자연미를 표현했으며 외벽을 화초장(花草墻)처럼 쌓아 올려 멋을 낸 것도 특징적이다.
이여발 묘 및 묘역 시 기념물 제50호·남동구 운연동 343-2
이여발 장군은 조선 영·숙종 대에 병조·공조참판, 어영대장, 지중추부사를 역임했고 숙종 9년(1683년) 6월 16일 사망했다. 인천 신현면(현재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의 문중 묘지에 안장했다가 숙종 29년(1703년) 현재의 위치인 인천부 조동면 운곡동(현재 남동구 운연동)의 작산 아래로 이장하고 300여 평에 달하는 묘역을 조성했다.
이여발의 묘는 조선시대 묘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전형적인 상석, 망주석, 문인석, 신도비 등을 갖추고 있다. 잘 보존된 묘역 주변에는 노송이 우거져 있어 장군의 묘로서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묘의 주인공인 이여발 장군은 한흥군을 제수받은 공신으로서 그의 전기가 세계 인명사전에 기록될 정도로 인천지역의 역사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묘역은 조선시대 묘제 연구 및 금석문 연구에 사료적인 가치가 크고 주변의 석물, 신도비 등이 지방문화재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인천해관문서 시 문화재자료 제20호·인천광역시 교육청(화도진 도서관)
화도진 공원을 끼고 호젓하게 자리잡은 화도진 도서관. 그곳에 보물이 숨어 있다. 이번에 우리시 문화재 자료로 새롭게 지정된 인천해관문서이다.
해관문서는 8면으로 된 책이다. 지금의 인천세관에 해당하는 인천해관(仁川海關)에서 현재의 인
- 첨부파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