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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세계무대 휘어잡은 인천아줌마들의 푸근한 화음

2001-05-14 1999년 3월호

설을 사나흘 남긴 지난달 10일에도 그들은 어김없이 모였다.

연일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면서 수은주가 곤두박질쳤지만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그들은 부평구 갈산동에 있는 인천여성문화회관 소강당에 하나 둘 모습을 나타냈다.

그저께 만나 실컷 노래부르고 짬짬이 '수다'도 떨었건만 언제 봐도 반가운 얼굴들이다. 연습 전까지 여기저기 모여 얘기보따리들을 풀어놓는다.

오늘의 주제는 아무래도 코앞에 닥쳐 온 설 준비 이야기가 주종을 이룬다. 영락없는 '아줌마'들이다. 상임지휘자 김한철 씨가 연습장에 들어서자 단원들은 재빨리 자리를 잡고 바튼기침으로 목을 가다듬는다. 오늘의 연습곡은 '오솔길'과 '석굴암'. 화음을 맞추려는 그들의 모습이 금방 진지해진다.

차가운 강당의 허공으로 그들의 입김이 하얗게 내뿜어진다. 얼마 안돼 연습장은 열기로 가득 찬다. 이제 그곳에 '아줌마'는 없다. 국제합창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여성합창단원만이 있을 뿐이다.

인천여성문화회관 합창단은 지난 95년 5월 정식으로 창단됐다. 당시 여성문화회관에는 시민을 위한 합창반이 개설돼 있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회관에 모여 취미삼아 입을 모아 노래를 불렀다. 한 두곡 배운 노래를 모아 수료식날 발표회를 가졌다. '어라, 이거 화음이 되는데.' 수료식으로 끝내버리기에는 못내 아쉬웠다. 그들은 결국 여성합창단을 발족했다.

창단된 그해 열린 인천여성합창경연대회에서 '덜커덕' 대상을 타버리고 말았다. '취미'의 차원을 슬슬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해 3월에 개최된 제 1회 전국여성합창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함으로써 국내 정상임을 자타가 확인했다. 유명세를 타자 부평기독교성가합창제 출연, 96여성합창대회 찬조출연 등 지역행사의 단골손님으로 불려다니기 시작했다.

이 무대 저 무대에 서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이 소화해 낼 수 있는 레퍼터리도 고전음악에서 가요까지 다양해졌다. 지루한 장마로 불쾌지수가 치솟던 97년 여름 어느날 오후, 인천여성문화회관에 더위를 식혀주는 청량제같은 낭보가 하나 전해졌다.

'일본 다카르츠카시 개최 제14회 세계합창경연대회 종합대상 수상'. 인천의 아줌마들이 엄청난 일을 해내고 만 것이다. 그들의 화음은 지난해 11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에서도 울려퍼졌다. 국내 어느 합창단도 아직 서보지 못했던 무대였다. 호주국제음악학교가 주최한 이 합창제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파퓨아뉴기니 난민들을 돕기 위한 행사였기에 그 의미가 더 컸다.

인천여성문화회관 합창단은 순수 아마츄어팀이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35세에서 47세까지의 주부 45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들은 자비를 들여 합창단을 운영한다.

악보구입에서부터 단복마련까지 모든 게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지방은 물론 해외공연 때도 순전히 자비로 다녀온다. 그래도 매년 초에 있는 오디션에 해를 거듭할수록 주부들이 줄을 잇는다. 노래가 좋아 '뭉쳤던'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작은 무대에도 열과 성을 다한다. 실직자를 위한 가곡의 밤, 동네학교 졸업식, 월미도 야외무대 등 올해도 30회 이상의 공연이 계획돼 있다. 결코 화려하진 않지만 세월의 연륜을 담은 그들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봐도 푸근하다. 원숙한 합창으로 가정의 하모니는 물론 지역의 화음을 이끌어내고 있는 인천여성문화회관 합창단은 이제 인천의 새로운 '명물'로 확실히 위치를 굳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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