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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우리지역 도서관 찾아가기

2001-05-29 1997년 10월호

학창시절을  보낸 이라면, 누구나 한편쯤 품고 있을 추억. 그것은 도서관에 대한 아스라한 기억이다. 변변한 독서실이나 문화공간 하나 없을 적, 도서관. 그곳은 우리에게 둘도 없는 공부방이기도 했고 만남의 광장이 되어주기도 했다.
지(知)와 감(感)을 교감하던 곳. 여전히 많은 니들이 지성과 감성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제 도서관의 문은 더 넓어졌다. 도서관의 본래기능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 필요하는 이들에게 제공하는 것. 그러나 그동안 공부방의 의미가 강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차츰 본래기능을 되찾아 가고 있고 이를 넘어 지역문화정보센터로서의 역할도 겸해가고 있다.
그것은 결국 도서관의 주고객을 학생에서 주부와 일반인들로까지 넓히는 역할을 했다. 현재 우리 인천에 있는 도서관은 모두8개. 시에서 운영하는 시립도서관과 교육청에서 운영하는도서관6개, 그리고 강화군립도서관이 있다.
일반열람실과 정기간행물실, 참고열람실 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모든 도서관이 공통적.
거기에 교육청 산하도사관들은 주부ㆍ아동실과 CD-ROM, VIDEO TAPE등이 비치된 멀티미디어실, 영화감상을 할 수 있는 시청각실, 어학실 등을 갖추고 있고, 인터넷을 통해 자료검색을 할 수 있다. 또 모든 D/B가 전산화되어 있어 컴퓨터로 단어만 입력하면 원하는 자료를 찾을 수 있다. 내년께면 모든 도서관끼리의 정보공유도 가능해진다. 시립도서관과 강화군립도서관도 전산화가 돼 우리시의 모든 도서관은 하나의 Net work으로 연결될 예정.
그렇다 한들 어디를 가든 같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8개의 도사관 나름대로 독특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때문에 입맛에 맞게 고르는게 좋다. 이 때, 한곳에서 만든 도서대출증으로 어느 곳에서든 이용할 수 있다. 낙엽을 밟으며 인천 도서관기행을 나서보자.

 

역사의 숲속에 쌓인 시립도서관
세상에 우리가 있기 훨씬 오래전, 이 도사관의 역사는 시작됐다. 올해로76살을 맞이한 시립도서관의 나이가 그것을 말해준다. 1921년. 지금의 중구 송학동 자유공원안에 인천부립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20여년이 지난뒤인 1946년 도서관은 이사를 했다.
지금 도사관인 율목동 242번지다.
당시엔 미군숙사로 사용되던 곳이다. 그보다 먼저 주인은 리끼다께라는 일본 부호.집의 내력이 그런만큼 집의 짜임새는 물론 전망도 그만이다. 지금은 관장실과 정기간행물실로 쓰는 건물이다. 6.25동란으로 책이 일부 소실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자료는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그만큼 구하기 힘든 귀한 자료가 많다. 계단식 2층으로 되어 있는 참고열람실에는 고서(古書)의 나이 냄새로 가득하다. 서고를 채우고 있는 수백여종의 향토자료와 일본원서들. 다른 도서관에 비해 시설은 열악하지만 역사를 구하는 이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정보의 보고다. 그래서일까. 시립도서관은 단골이 많다. 대개 허리가 구부정한, 과거를 찾는 학자들이다.
특히 신문실은 100년여의 세월을 넘나든다. 1896~1899년까지의 독립신문의 축쇄본부터 황성신문, 매일신보등이 있다. 또한 조선일보의 경우 1923년대의 축쇄본부터 현재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고 지방지의 경우 경인일보는 55년 5월호~62년, 82년~86년, 1988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논문 전문화 자랑 중앙도서관
사물의 이치를 알게 되어야만 비로소 바른 지식을 얻게 된다.중앙도서관 문턱을 넘자마자 우리의 눈길을 잡아채는 한줄의 글귀 한조각. 그 앞에 서서 바라보는 중앙도서관 건물은 평범하다. 인천시 교육청 산하에 있는 6개 도서관의 맏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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