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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계획에서 유치까지 3년, 우리시 무엇을 했나

2001-05-23 1997년 7월호

94년. 자칫 아파트단지로 그치고말 운명이었다.

원래 송도신도시는 6공화국 노태우정부의 200만호주택건설 계획에 따라 조성을 계획하고 정부로부터 매립허가를 받아놓았던 상태.

다른 신도시처럼 주거중심의 아파트단지로 태어날 채비를 하고 첫삽을 뜬 것이 지난 94년 9월. 95년. 그러나, 민선지방자치단체 출범과 함께 사정은 달라졌다.

우리시는 인천국제공항(Airport) 인천국제항만(Seaport) 그리고 송도정보화신도시(Teleport)를 중심으로하는 장기적인 비젼인 「TRI-PORT 계획」을 만들어 역점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 안에서 단순한 송도신도시는 송도'정보화'신도시로 거듭 태어났다. 96년 3월. 송도신도시를 '첨단정보산업도시(Teleport)'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고 준비를 해오던 우리시가 국가경쟁력강화민간위원회 산하의 <미디어밸리 추진위원회>와 첫 접촉을 했다.

첨단정보산업도시를 조성하겠다는 우리시의 뜻과 미디어밸리 프로젝트가 함께 조우한 것이다. 96년 10월 31일. 미디어밸리 추진위원회는 <미디어밸리 입지선정과 관련한 제안 설명회>를 열었다. 이때부터 우리시는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 유치제안서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유치경쟁은 치열했다. 모두 12개 시·도가 정보산업육성에 대단한 열의를 갖고 유치의사를 강력하게 밝혀왔다.

70, 80년대 중화학산업단지들이 오늘날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애물단지로 변한데 비해 미디어밸리에 입주할 기업들은 21세기 국가핵심전략사업인데다, 청정 멀티미디어산업이라는데 그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시도 남달랐다.

 다른 시·도들이 대부분 유치제안서 작성을 다른 기관에 용역을 주었던데 반해 우리시는 직접 종합개발사업기획단에서 발로 뛰어 제안서를 작성하는 등 남다른 공을 들였다. 유치제안서를 탄탄하게 만들어 내실을 기하는데 역점을 둔 것이다.

또한 최기선 시장과 실무담당자들은 정보통신관련 세미나 등에 적극적으로 참석, 우리시가 미디어밸리를 유치해야 하는 타당성을 대외적으로 알리는데 노력했다.

1996년 12월 24일. 미디어밸리 추진위원회는 각 시·도가 접수한 유치제안서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현지조사를 거쳐 입지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제안서의 타당성을 포함, 교통접근성·토지가격·멀티미디어진흥기금 출연·국제비즈니스환경 등 모두 74개 항목이 평가근거가 됐다. 결과는 우리시 송도신도시가 제 1순위. 2위는 역시 우리시 용유도, 대전광역시, 충정북도 청주시, 경기도 파주시 등의 순.

우리시는 입지여건 외에 특히 지자체의 지원방안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처럼 우리시가 선정된 이유는 △우리시가 가진 지리·경제적인 잇점과 더불어 △대규모의 부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 △우수인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시와 시민들의 미디어밸리 조성의지가 높았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1997년 4월. 미디어밸리추진위원회는 우리시와 협의를 통해 기본합의서를 작성했다. 1997년 5월 10일. 제 51회 인천광역시의회의 의결을 얻어냈다. 그리고, 1997년 6월 10일 5시. 우리시와 미디어밸리 추진위원회는 <미디어밸리 조성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아파트로 변할 뻔했던 땅이 21세기 지구촌정보를 손안에 쥘 금싸라기 땅, <첨단정보산업도시>로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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