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관광

인천감옥 생활 통해 얻은 겨레사랑

2001-05-14 1999년 3월호

'인천 축항은 내 피땀이 배어 있는 곳이다.

' 백범은 해방에 되자 인천으로 달려왔다. 인천에 대한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

백범은 인천에서 두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1896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육군중위 쓰지타(土田)를 때려죽인 죄로 인천감옥(현 중구 내동)으로 압송됐다. 사형집행 3일전에 고종황제가 그때 마침 개통된 전화를 이용해 사형집행중지 어명을 내림으로써 목숨을 구한다.

서곶 시천동 출신 유인무의 도움으로 탈옥한 후 또다시 안악사건과 105인사건에 연루돼 1914년 인천감옥에서 다시 수형생활을 한다.

이때 선생은 매일 아침 인천항 축항 공사장에 끌려나가 강제노역에 시달린다.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어머니 곽낙원여사는 인천에서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며 아들의 옥바라지를 한다. 아들을 면회하면서 '경기감사가 된 것보다 더 자랑스럽다'며 백범의 용기를 북돋웠다. 인천에서 겪은 두 차례의 수감생활은 선생이 민중의 고통과 함께 하는 계기가 됐다. 백범의 겨레사랑은 인천생활을 통해 얻은 결실 중의 하나다. 이런 뜻을 기리기 위해 인천시민들은 97년에 남동구 장수동 인천대공원에 백범과 어머니 곽낙원여사의 동상을 세웠다.  

첨부파일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콘텐츠기획관
  • 문의처 032-440-8302
  • 최종업데이트 2025-08-28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