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수구장식 흔드는 바람… 중국風인가
인천역 앞 횡단보도를 건너 마주치게 되는 '짜리몽땅'한 언덕은 조금은 색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가파른 출입구이다. 언덕이라고 해봐야 고작 서른 걸음쯤 성큼성큼 옮기면 무난히 정상이다.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서 똑바로 보이는 간판은 '대원 한약방'. 예까지 당도하면 중구 북성동 '차이나타운' 번지수를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오직 하나뿐인 중국인 거리 중구 북성동 차이나타운. 이 거리를 걷는 일은 100년의 시간을 30분만에 역행하는 굵고 짧은 여행이다.
과연 중국인 거리에 가면 중국인을 만나게 될까. 한약방에서 왼쪽으로 삼십보쯤 걸으니 인천중화기독교회가 오른편에 서있다.
거기서 조금 떨어진 맞은편 골목엔 조각된 용 수십마리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붉은 담장의 기와집이 있다. 중국인의 절이자 옛 쿵푸 도장이었던 의선당(義善堂)이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감흥이 없어 오히려 서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단지 시작일 뿐이다.
의선당에서 유턴해 다시 1분쯤 걸어갈 즈음 눈앞에 펼쳐지는 골목풍경은 마치 중국의 상해 거리에 툭 던져진 것 같은 기분좋은 착각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물은 '자금성'. 드럼통만큼 굵은 허리의 붉은 기둥이 출입문을 떠받치고 있고 입구에는 붉은 수구 장식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것은 보기와는 달리 약한 바람에도 쉬 흔들려 애처롭기까지 하다.
중화당 한약방을 지나고 골목 하나를 건너뛰어 서있는 풍미( 美)라든가 대창반점, 상원처럼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요리집은 대부분 이런 풍이다.
요리집들 사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살림집들은 자로 잰 듯 네모반듯하다. 중국풍에 한국적인 건축양식이 적당히 가미된 이들 집들은 한국땅에서 대대로 살아온 그들이 자연스레 일군 건축문화를 엿볼 수 있다. 대창반점을 끼고 돌아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면 공기의 흐름부터 달라진다. 이 거리의 시계추는 '1900년 1월 1일 정오'에서 멈추었는지 모르겠다.
백년이라는 시간의 궤적이 군데군데 달라붙어 있는 중국인의 집들은 붉은 대문에 '吉吉'자를 붙여놓고 오는 세월도 막아버리겠다는 태세로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있다. 이런 옛집들 사이로, 도통 이 거리와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새집들이 꾸어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드문드문 서있다. 그런 집들을 몇집 거슬러 가면 인천화교학교와 화교협회 사무실이다. 博愛(박애)라는 큼직한 글씨가 교문 입구에 쓰여진 화교학교는 옛 청국영사관 자리에 1901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학교 바로 앞 복래춘. 영화 세트속의 가게같은 그곳은 차이나타운의 터줏대감이다. 가게 안으로 쑥 들어가면 벽을 가득메운 중국민화가 담긴 액자에 눈이 간다. 진열장에는 복잡한 한자가 씌어진 중국 술병과 월병, 향, 제기 같은 중국물건이 놓여있다. 과자나 빵종류는 모두 직접 만든단다. 월병은 네 개들이가 3천원,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속이 푹 꺼지는 공갈빵은 2천원이다. 이집 주인 곡해옥씨의 할아버지가 이 자리에서 가게를 시작한게 1900년대 초반이었다니 중국인 거리에 가족사를 써놓은 셈이다.
복래춘에서 몇발자욱 떨어진 언덕 아래가 올 2월께 패루가 세워질 예정지이다. 패루(牌樓)는 화교들이 정신적인 지주로 삼는 장징 조형물로 중국 고퐁의 출입문이다. 여기서 기호일보를 반환점 삼아 돌면 바로 오른쪽으로 붉은 나무 기둥에 좁은 테라스가 달린 2층집이 보인다.
폐가이지만 중국맛이 물씬 난다. 그 앞으로 '북경반점'이 있다. 얼마전 영화촬영을 위해 세워졌지만 영업을 하지는 않는다. 북성외과의원을 끼고 돌아 풍미 건물 옆 샛길로 내려가면 웬만한 공공기과만큼 거대한 건물이 서있다. 한때 청요리의 일번지로 장안에 이름을 날렸지만, 이제는 비둘기에게 카운터를 내주고 30년 넘게 방치되어 있는 공화춘이다. '共' '和' '春'. 세월이 무색할 지경으로 뚜렷한 세글자의 족적은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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