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선두리에서 한 굽이 돌아 사기리를 지날 때면...
선두리에서 한 굽이 돌아 사기리를 지날 때면 잠시 바다와 멀어진다. 도로 굴곡상 육지 안쪽으로 깊이 파고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에 천연기념물인 사기리 탱자나무, 이건창 생가, 함허동천, 정수사 등 강화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가 줄지어 나타나지만 애써 바다 쪽으로만 고개를 돌리며 내처 달린다. 진고개를 넘으면 다시 서해가 펼쳐진다. 바다를 빨리 보고 싶어하는 방문객들의 조급한 마음을 울퉁불퉁한 시골길이 진정시킨다. 동막해수욕장까지의 오르막 산길은 비포장 도로. 오히려 속력을 낼 수 없어 느긋하게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산을 넘을 수 있다.
아스팔트 내리막길로 접어들 즈음 바로 왼편 마루턱에 또 다른 돈대가 성곽처럼 우뚝 서있다. 분오리돈대다. '다 같은 돈대인데…' 하면서 지나쳐버리면 강화도 갯벌의 스펙터클을 맛보지 못하는 꼴이다. 툭 튀어나온 땅에 세워진 분오리돈대에서의 시야는 바다 양쪽으로 거칠 것이 없다. 수 만년 동안 하루 두 번씩 바다와 육지가 몸을 섞어 만든 질펀한 땅 갯벌.
선두리-분오리-동막리-여차리-장화리 까지 이어지는 1천8백여 만 평의 진회색 대지는 염하수로와 석모수로를 통해 흘러온 임진강과 한강 물로 통통하게 살찌고 있다. 파도의 파문(波紋)이 남겨 놓은 빗살무늬가 멀리 신도, 장봉도 까지 수놓은 듯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돈대를 내려와 동막해변을 거닐었다. 갯벌이라고 발이 푹푹 빠지는 뻘로만 뒤덮여 있는 것은 아니다. 모래 끼가 많은 동막갯벌은 발목 정도만 잠길 뿐이다. 동막해변은 길이 2백여m 폭 10여m의 백사장과 노송이 둘러쳐져 있어 만조 때는 해수욕장 모양이 된다. 모래톱 바깥으로 300m 정도는 나가야 비로소 질퍽거린다. 동막해수욕장은 갯벌대중화에 한몫 했다. 여름철이면 갯벌은 개구쟁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물이 차면 헤엄치기, 물 빠지면 갯것놀이. 아이들은 민챙이나 방게와 숨박꼭질하며 금방 개흙 덩어리로 변한다. 인간의 숨겨진 욕망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갯벌 끝 편에는 뻘일을 하러 나온 아낙네들이 허기진 젖먹이처럼 뻘을 헤치는 '생존공간'이 펼쳐져 있다.
동막에서 다시 고개를 넘으면 호젓한 마을 여차리다. 강화에서 바닷새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다. 봄 가을이면 나그네새인 도요새와 물떼새가 찾아오고 겨울이면 기러기와 개리 등이 내려온다.
특히 지구상에 530여 마리밖에 없다는 천연기념물(제205호)인 저어새가 '귀빈' 자격으로 찾아온다. 이따금 백로나 왜가리까지 날아든다. 여차리 갯벌에는 약 5만여 마리의 새가 함께 한다. 졸음이 절로 쏟아질 정도로 평화롭고 한적한 마을 장화리로 접어든다.
이곳에는 폐교를 고쳐 만든 해양환경탐구수련원이 자리잡고 있다. 매년 5월부터 10월까지 장화리 갯벌은 '학습공간'으로 바뀐다. 학생들은 갯벌의 생명체들이 때론 공생하며 혹은 천적관계로 지내면서 나름대로 소우주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단, 라메르, 해둥지… 장화리 길가에는 운치있는 카페들이 자리잡고 있다. 눈치빠른 방문객은 이곳에 또 다른 볼거리가 있음을 안다. 오후 6시, 해는 늬엿늬엿 기울며 누울 자리를 찾는다.
나그네도 이십리 갯벌 기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찻집에 들어선다.
노을. 진홍빛 물감을 풀어헤치고 해는 서쪽 하늘에 한 폭의 유화를 그려간다. 커피 잔을 적신 노을은 나그네의 몸으로 서서히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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