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데이트족 위해 원스톱서비스 제공하는 거리
2001-05-15 2000년 3월호
데이트족 위해 원스톱서비스 제공하는 거리
아이쇼핑을 하다보니 어느새 패션거리의 막다른 길. 실제 이 거리의 길이는 300여 미터 밖에 안되어 부지런히 걸으면 1∼2분도 채 안 걸리지만 쇼윈도우에 진열된 옷가지나 구두에 정신을 팔고 가끔 들어가 구경도 하면서 걷다 보면 도착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걸어온 길을 포함해서 다섯 갈래로 길이 나뉘어지는 이곳은 '신포동 미니 로터리'. 도로 양 옆으로 노상주차장이라 다소 복잡한 편이다. 어느 골목을 택하든지 쇼핑으로 피곤해진 발도 쉬고 시장기가 도는 배도 채울 만한 곳이 수두룩하다. 카페와 음식점이 많아서 거리는 늘 약속 시간에 임박해 목적지를 찾아가는 이들, 혹은 이미 데이트를 마치고 쏟아져 나와 거리를 방황하는 연인들로 북적인다. 토요일 저녁이나 화이트 데이같이 특별한 날이라도 된다면 웬만한 카페나 분위기 있는 음식점은 초저녁에 이미 포화상태가 된다. '약속1번지'라 통할만큼, 이 거리는 오랜 동안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지켜 보아왔다. 오죽하면 '이 거리에 서서 5분만 서 있으면 아는 사람을 20명 정도는 만나야 인천사람 자격이 있다'고 할 만큼. 그렇게 사람이 모여드는 이유는 딱히 카페 숫자가 많아서이기 보다 정작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 같다. '현대사회'처럼 싸고 푸짐한 스테이크로 감동을 준다든가, 구식같지만 촛불을 켜놓아 사랑고백하기 좋다든가, 혹은 특별한 날을 위해 원하는 음악을 신청하면 아직도 LP판을 틀어 준다든가…, 하는 소박한 낭만이 있어 '추억 만들기'위해 찾는 쌍쌍들이 많다. 제철 꽃을 늘 선물하기 적당한 크기로 포장해두고 기다리는 꽃집과 '급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은행도 두 세 곳이 24시간 대기 중. 데이트족을 위해 이 거리는 철저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봄나물로 봄냄새를 풍기는 장터거리
그러나, 진면목은 이제부터다. 패션거리부터 카페골목까지 둘러보고 매정하게 신포동을 벗어난다면 그건 신포동의 봄을 반 쪽 밖에 보지 못한 것이다. 장터거리, 신포시장이 남아있다. 신포시장의 봄은 코 끝에 와있다. 달래며 씀바귀, 냉이처럼 도시에서 구경하기 힘들었던 봄나물들이 지천으로 깔려 봄 냄새를 잔뜩 뿜어대고 있다. 수예점들은 노랑, 혹은 분홍 빛깔로 장식한 방석과 쿠숀을 진열해 놓았고 겨우내 뜸했던 지물포 문턱은 봄단장하려는 방문객들로 넘쳐난다. 장터안의 터줏대감 '의흥덕 양화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봄철에 어울림직한 날렵한 모양의 구두가 매장에 부쩍 많이 등장했다. 100여 년 전, 신포시장이 처음 생길 때 중국인 '의흥덕'이 처음 문을 연 구두점이라는데, 지금은 손자가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시장 안의 명물이다. 그 시절의 봄엔 어느 빛깔의 신발이 진열되어 있었을까. 부쩍, 시장을 찾는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진 것도 장터거리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큰 징표. 겨우내 뜸했던 인천항의 선박 출입이 다시 잦아지면서 쇼핑을 나온 외국인 선원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들이 풍기는 이국적인 정취는 인천에서 오로지 신포시장만 유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맛이다. 그것은 거리에 나붙은 러시아, 혹은 영어로 쓰여진 간판에서 누구나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러시아와 외교관계가 수립된 95년 뒤로는 러시아어 간판이 많이 늘었다. 러시아 선원들이 가장 즐겨찾는 단골집은 '우리집 양념통닭'이다. 이 집 손님의 30%는 러시아 선원들. 레닌동상이 그려진 패넌트와 옛 소련국기도 걸려있을 만큼 그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조호또이 빼?쇼크f0 (골든 치킨)'는 그들끼리만 통하는 이 집의 애칭. 예전에는 단연 '미제'를 주로 파는 수입상점들이 주류였다. 전쟁 뒤부터 생기기 시작해 한때는 30여 곳에 육박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지만 지금은 시장 본 골목에 두세 곳과 샛 골목에 서너 곳 정도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파는 물건들도 캬라멜, 커피, 술 같은 생필품에서 특산물이나 가정용 소품 위주로 바뀌었다. 장터 안에서 유독 '철없는' 곳이 있다면
아이쇼핑을 하다보니 어느새 패션거리의 막다른 길. 실제 이 거리의 길이는 300여 미터 밖에 안되어 부지런히 걸으면 1∼2분도 채 안 걸리지만 쇼윈도우에 진열된 옷가지나 구두에 정신을 팔고 가끔 들어가 구경도 하면서 걷다 보면 도착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걸어온 길을 포함해서 다섯 갈래로 길이 나뉘어지는 이곳은 '신포동 미니 로터리'. 도로 양 옆으로 노상주차장이라 다소 복잡한 편이다. 어느 골목을 택하든지 쇼핑으로 피곤해진 발도 쉬고 시장기가 도는 배도 채울 만한 곳이 수두룩하다. 카페와 음식점이 많아서 거리는 늘 약속 시간에 임박해 목적지를 찾아가는 이들, 혹은 이미 데이트를 마치고 쏟아져 나와 거리를 방황하는 연인들로 북적인다. 토요일 저녁이나 화이트 데이같이 특별한 날이라도 된다면 웬만한 카페나 분위기 있는 음식점은 초저녁에 이미 포화상태가 된다. '약속1번지'라 통할만큼, 이 거리는 오랜 동안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지켜 보아왔다. 오죽하면 '이 거리에 서서 5분만 서 있으면 아는 사람을 20명 정도는 만나야 인천사람 자격이 있다'고 할 만큼. 그렇게 사람이 모여드는 이유는 딱히 카페 숫자가 많아서이기 보다 정작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 같다. '현대사회'처럼 싸고 푸짐한 스테이크로 감동을 준다든가, 구식같지만 촛불을 켜놓아 사랑고백하기 좋다든가, 혹은 특별한 날을 위해 원하는 음악을 신청하면 아직도 LP판을 틀어 준다든가…, 하는 소박한 낭만이 있어 '추억 만들기'위해 찾는 쌍쌍들이 많다. 제철 꽃을 늘 선물하기 적당한 크기로 포장해두고 기다리는 꽃집과 '급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은행도 두 세 곳이 24시간 대기 중. 데이트족을 위해 이 거리는 철저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봄나물로 봄냄새를 풍기는 장터거리
그러나, 진면목은 이제부터다. 패션거리부터 카페골목까지 둘러보고 매정하게 신포동을 벗어난다면 그건 신포동의 봄을 반 쪽 밖에 보지 못한 것이다. 장터거리, 신포시장이 남아있다. 신포시장의 봄은 코 끝에 와있다. 달래며 씀바귀, 냉이처럼 도시에서 구경하기 힘들었던 봄나물들이 지천으로 깔려 봄 냄새를 잔뜩 뿜어대고 있다. 수예점들은 노랑, 혹은 분홍 빛깔로 장식한 방석과 쿠숀을 진열해 놓았고 겨우내 뜸했던 지물포 문턱은 봄단장하려는 방문객들로 넘쳐난다. 장터안의 터줏대감 '의흥덕 양화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봄철에 어울림직한 날렵한 모양의 구두가 매장에 부쩍 많이 등장했다. 100여 년 전, 신포시장이 처음 생길 때 중국인 '의흥덕'이 처음 문을 연 구두점이라는데, 지금은 손자가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시장 안의 명물이다. 그 시절의 봄엔 어느 빛깔의 신발이 진열되어 있었을까. 부쩍, 시장을 찾는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진 것도 장터거리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큰 징표. 겨우내 뜸했던 인천항의 선박 출입이 다시 잦아지면서 쇼핑을 나온 외국인 선원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들이 풍기는 이국적인 정취는 인천에서 오로지 신포시장만 유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맛이다. 그것은 거리에 나붙은 러시아, 혹은 영어로 쓰여진 간판에서 누구나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러시아와 외교관계가 수립된 95년 뒤로는 러시아어 간판이 많이 늘었다. 러시아 선원들이 가장 즐겨찾는 단골집은 '우리집 양념통닭'이다. 이 집 손님의 30%는 러시아 선원들. 레닌동상이 그려진 패넌트와 옛 소련국기도 걸려있을 만큼 그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조호또이 빼?쇼크f0 (골든 치킨)'는 그들끼리만 통하는 이 집의 애칭. 예전에는 단연 '미제'를 주로 파는 수입상점들이 주류였다. 전쟁 뒤부터 생기기 시작해 한때는 30여 곳에 육박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지만 지금은 시장 본 골목에 두세 곳과 샛 골목에 서너 곳 정도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파는 물건들도 캬라멜, 커피, 술 같은 생필품에서 특산물이나 가정용 소품 위주로 바뀌었다. 장터 안에서 유독 '철없는' 곳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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