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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해를 따라 도는 강화 한바퀴

2001-05-18 1999년 11월호

'담장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강화에는 볼거리가 갈피갈피 서려 있어 행간을 제대로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사실 강화는 하루 이틀 돌아서는 그 섬이 품고 있는 깊고 넉넉한 모습을 다 볼 수 없다. 시간과 테마 등 여행객들의 형편에 따라 선택이 틀려지겠지만 굳이 노정의 모범답안을 요구하면 '강화여행은 해를 따라 돌아라'이다.

 

아침나절에는 동쪽 해안을 따라 동향이나 남향으로 가부좌를 틀고 있는 유적들을 보고 늦은 오후에는 서쪽해안을 따라 돌며 저녁노을에 채색된 섬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강화여행은 강화역사관에서 출발한다.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이정표의 길 안내 따라 오른쪽으로 빠져나와 길 밑으로 들어가면 역사관의 모습이 보인다. 지난 88년 9월에 개관한 강화역사관은 4개 전시실로 나뉜다. 각 전시실을 돌고 나오면 일단 강화역사에 대한 브리핑을 받는 격이 된다. 특히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 벽에 걸려있는 깃발, 신미양요 때 빼앗겨서 현재 미국해군사관학교에 보관돼 있다는 그 깃발의 모형을 보면 강화역사기행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역사관을 나와 바다 쪽으로 몇 발짝 내디디면 갑곶돈대가 나온다. 바로 앞에 김포 땅이 보이는 갑곶은 옛 강화의 출입문이었다. 고려 강도(江都)시절에는 이곳에서 몽고와 격전을 치렀고 병인양요(1866) 때는 프랑스 로즈제독이 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에 닻을 내린 곳이다.
역사관 옆에는 400년 된 5m 짜리 탱자나무가 있다. 우리나라(남한)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탱자나무로 천연기념물 제 78호이다. 이 나무는 관상수가 아니다. 무기였다. 성벽을 쌓고 그 밑에 가시돋친 이 나무를 심어 적들의 접근을 어렵게 만든 것이다. 강화에는 나무 하나 돌 하나 역사적 의미가 담기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읍내로 향하면 48번·84번 도로의 갈림길이 나타난다. 48번 도로를 택해 읍내로 들어서 농협 건물을 앞에 두고 우회전하면 고려궁지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궁터로 가기 전 길목에는 둘러볼 때가 몇 군데 있다. 먼저 초입에 세워진 김상용 순절비각을 만날 수 있다. 병자호란 때 청군이 강화를 침입하자 강화성 남문 위에서 화약에 불을 붙여 순절한 우의정 김상용의 충절을 기린 비석이다.
그 골목을 따라 50여 m 올라가면 자그마한 고택(古宅) 한 채와 마주친다. '용흥궁(龍興宮)'.글자 풀이를 하면 용이 일어난 뜻일 터인즉, 강화도령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이다. 원래는 초가집이었으나 1853년 강화유수 정기세가 3간 짜리 기와집으로 다시 지었다. 마당에는 작은 우물과 툇마루 달린 작은 방 등 잊혀져 가는 시골집을 연상케 한다.
강화도령 원범(철종의 본명)이 코흘리던 시절에 동무들과 술래잡기, 제기차기를 했을 골목을 빠져나와 순절비 위 다음 골목으로 100여m 오르면 이 땅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건물이 나타난다. 이층 기와집에 십자가가 세워진 성공회 강화성당이다. 1900년에 세워진 이 건물의 내부는 서양식 예배당 구조지만 겉모양은 한식 팔작기와지붕을 하고 있다. 백두산 원시림에서 벌채한 소나무를 목재로 사용했고 경복궁을 지은 도편수(우두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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