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인천과 중국 다리 역할 뿌듯
'인천시 시민 명예외교관'이 그것이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단다. 소박하지만 보람있는 일, 바로 시민을 대표해서 외국인들에게 인천을 홍보하는 일이다.
시민명예외교관이 된 것은 지난 95년. 우리시가 국제화 도시를 지향하면서 외국과의 문화예술 공연, 국제회의, 무역상담등이 활발하게 됐다.
여기서 통역은 물론 보통시민의 입장에서 인천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영어를 비롯해 일어, 중국어등 50여명의 시민명예외교관이 발탁됐다. 야우지?은 그중 자타가 인정하는 멸사헌신파. 지난해 4월 천진시 부녀연합회 대표단이 방문했을때 통역을 맡은 것을 비롯해서 지난해만 대여섯차례 민간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천진시 정부대표단의 인천 방문 이후 성사된 천진 인천 개발유한공사 법인 조인식을 보고는 무척 뿌듯했단다.
비록 그자신 통역을 한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고향이 대구인 야우지?. 도화동에서 <청도>란 중국집을 경영하고 있는 아버지 야우위숑(요여송. 54)이 중일전쟁때 부산으로 피난을 오는 바람에 그는 한국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그뒤로 강원도 홍천에서 컸다.
그래선지 그의 한국말엔 강원도 감자 냄새가 구수하게 난다. 그렇다면 인천에서 태어난 사람도 아닌 그가 말그대로 '명예'뿐인 일에 발벗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인천살이 올해로 9년째인 그는 인하대학교 91학번. "중국인으로 한국에 살면서 뭔가 이나라를 위해 일을 하고 싶다. 더불어 중국와 한국의 다리역할을 하고 싶어서" 였단다. 사실, 명예외교관이 되기 전만해도 인천에 대해선 까막눈이었다. 그러나 이젠 누가 뭐래도 인천'통'이다. 그렇게 되는데는 댓가를 지불했다.
이론공부는 필수. 실전도 익혔다. 명예외교관이 되고나서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여행도 여러번. 어지간히 다리품을 판 셈이다. 그덕에 중국에서 손님들이 오면 행사나 회의뒤에 자신있게 뒷풀이로 안내했다. 미리 탐색해둔 골목시장이며 분식집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래선지 그와 만났던 사람들은 아직까지 편지와 전화를 주고받는다. 그들이 잊지 못하는 건 야우지?뿐은 아닐 것이다. 그를 통해 '인천'을 기억할 것이다. "명예외교관을 하면서 인천을 위해 한 일보다 오히려 얻은 것이 많다. 나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양우지?은 앞으로 명예외교관일로 더 바빠지는 것이 바램이란다.
인천을 찾는 중국인에게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도시'라고 자신있게 소개한다는 야우지?. 아무래도 그의 인천사랑은 보글보글 끓다 쉬 가라앉는 냄비사랑은 아닌 성 싶다.
서서히 데워졌다 식을 줄 모르는 '무쇠솥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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