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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세계 열강들 제물포항 인근에 영사관 설치

2001-05-17 2000년 8월호
인천은 19세기 말 일본인들에게는 '진센', 중국인들은 '젠추안'이라고 불리는 국제도시였다. 1897년 인천에는 2만 명의 인구 중 서양인과 일본인 및 청국인 등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가까운 4천374명이 살고 있었다. 개항이 되자마자 일본과 청국을 비롯한 구미 각국은 물밀듯이 인천으로 들어왔고 자국의 이익과 거류민의 권익보호를 위해 영사관을 설치했다. 당시 개항장 제물포는 현재 서울의 광화문 일대와 한남동 외교가 처럼 외국공관이 밀집한 외교타운이 형성되었다.
제일 먼저 인천에 영사관을 설치한 나라는 일본. 정식으로 개항이 되기도 전인 1882년 4월경에 중구 중앙동 옛 조달청사무소 자리에 가건물을 지어 임시로 영사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그후 지금의 중구청 자리에 2층 짜리 목조 건물을 지어 정식으로 영사관 공관을 지었다. 영사관 내에는 우편국, 경찰서 그리고 감옥도 설치하는 등 '작은 일본'을 구축하였다.
1869년 일본인들에 의해 고안된 인력거는 청일전쟁 당시 일본 영사관이 서울-인천 왕래를 위해 우리나라에 들여왔는데 그 후에는 귀족이나 기생 등이 이용하는 대중 교통수단 되었다.
일본에 이어 영사관을 설치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영국은 당시 인천에 진출한 자국의 무역상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현재의 오림포스호텔 마당, 야트막한 언덕에 영사관 건물의 머릿돌을 박았다. 1884년 3월 개설 당시에는 좁은 공간이었으나 1897년에 다시 아담한 벽돌 단층 156평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영사관 언덕 위에는 봉화대가 있어 인천 앞 바다에 외국선박이 들어오면 서울까지 전화가 개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봉화를 즉시 올려 서울에 알렸다.
1915년 제 1차 세계대전 중 한동안 영사관을 폐쇄시키고 인천에 거주하며 광창양행이라는 무역상사를 운영하고 있던 영국상인 월터 조지 벤넬에게 명예 영사직을 부여했다. 이후 영국 외무성은 그를 정식 영사로 임명하여 업무를 보게 했다. 해방 후 영사관은 시립예술관, 인천무선전화국 청사로 사용되던 중 한국전쟁 때 불 타 없어졌다.
청나라는 1884년 4월 지금의 북성동 화교소학교 자리에 청국이사부(理事府)라는 이름으로 영사업무를 시작했다. 청일전쟁(1894~95) 중에 잠시 폐쇄했다가 1898년 1월 1일에 청국영사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영사관 내에는 전보국과 순포청(경찰서)를 설치하였고 시내에 분청(分廳) 까지 두고 자기나라의 거류민들을 보호하였다. 청국영사관은 일제 말기에 그 문을 닫았으나 그 정확한 날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주한 공사관(서울) 내에 하부조직으로 부영사관을 설치하고 인천·평양·진남포 등을 관할하게 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1902년 10월 31일자로 부영사관을 인천에 이전 설치하였는데 일본이 인천항을 거의 독점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보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 서둘러 옮겼다. 무작정 옮겼기 때문에 업무를 볼 공간이 없어 랜디스 박사가 숨지고 난 후 비어있던 내동의 성공회 성누가 병원을 임시거처로 사용했다.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03년 인천역 건너편 옛 해군인천경비부 자리에 2층 짜리 건물을 지었다.
그러나 1904년 러일전쟁에서 패함으로써 서울의 러시아공사관과 인천영사관은 일본군에게 포위되고 직원들은 감금당했다. 몇 일 후 파블로프 공사와 보리아노스키 인천영사를 비롯해 러시아 외교관과 가족들은 인천항을 통해 본국으로 쫓겨가는 수모를 당한다.
세계 열강 중의 하나였던 독일은 인천에 영사관을 개설하지 않았다. 뜻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세창양행 등 독일계 무역상사가 인천에 진출해 있었기 때문에 머지않아 영사관을 설치하려 했다. 그들은 지금의 자유공원 한미수교10주년 기념탑 자리 남쪽에 영사관 부지를 확보해 놓고 'K.D.K 대덕국 영사관 대지'라는 표지석을 세웠다. K.D.K는 Kaiserlich Deutsches Konsulat의 약자로 '독일제국 영사관'이란 뜻이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 땅에서 주도권을 잡으면서 영사관 계획은 물 건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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