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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눈물로 태평양 건넌 동포들 훗날 용현벌에 대학 세워

2001-05-22 1998년 8월호
1902년 겨울 어느날, 미국 상선 한척이 제물포항으로 미끌어지듯 들어왔다. 뱃머리에는 '게릭'이라고 쓰여있었다. 그 배는 바로 우리나라 최초로 이민자들을 실어 나른 이민선이었다.
개화기 제물포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한 이민 사업의 개척지로 떠오른 것은 항구라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리교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와이 이민은 당시 내리교회 목사인 조원시(G. H. Jones)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당시 한국의 여건을 감안하여 이민모집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제 1차 이민의 대다수는 내리교회 교인이었고 인솔자도 교회 전도사였다. 당시 많지 않은 교인 수 가운데서 이민자들이 속속 지원함에 따라 서양 선교사들은 조 목사를 은근히 원망했다고 한다.
이민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은 1902년 가을에 하와이설탕회사에서 한국정부에 이민 노무자 고용을 제의해 오면서 시작된 것이다. 원래 하와이에는 중국인을 비롯하여 포루투갈인, 일본인 등이 일찍부터 사탕수수 경작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수가 점점 많아지자 노임분쟁이나 동맹파업이 빈번해졌다. 이에 설탕회사는 온순하고 근면한 한국인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한국정부는 하와이설탕회사 측과 이민용역계약을 체결하고 이 일을 전담할 기관으로 수민원(綏民院)을 설립하고 초대 총재에 민영환을 임명했다.
하와이 사탕재배인협회측은 이민모집사업을 활발하게 펼치기 위해 당시 인천에 있던 동양개발회사의 지배인 데슐러에게 의뢰하여 노동자를 모집하게 했다. 그는 인천에 동서개발회사를 설립하여 서울 인천 부산 원산 등지에 지사를 두고 전국방방곡곡에 광고했다. 대한제국 정부에서도 이민조약에 따라 그들에게 여행권의 일종인 '大韓帝國執照'를 발행했다.
그러나 그 실적이 초기에는 신통치 않았다. 이에 그들은 조원시 목사에게 이민모집의 협조를 요청했고 조목사는 인천의 교인들에게 하와이 이민을 권유하게 된 것이다. 그가 교인들에게 하와이 이민을 권유하자 당장에 교인 50명과 항만노무자 20여명이 이민노무자로 응모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모인 이민자 121명은 마침내 12월 22일 차가운 겨울날, 관리들과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따듯한 남쪽나라 하와이로 향했다. 그들은 먼저 일본 고베에 도착하여 신체검사를 받았다. 이중 몸이 허약하거나 병이 있는 사람은 중도에 탈락하고 만다.
나머지 101명은 미국상선 겔릭호를 타고 그 이듬해 1월 13일 마침내 하와이 호룰루루항에 도착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목골리아의 사탕수수농장에 배치돼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03년 2월 10일 두 번째 배 캅틱호 63명, 2월 17일 코리아호 72명 등 그해만도 16척의 배로 1천133명이 하와이로 건너갔다. 이듬해는 33척의 배편으로 3천434명, 1905년에는 16척의 배편으로 2천659명이 태평양을 건너가는 등 하와이 총 이민자수는 7천226명이었다. 남자가 6천48명, 여자가 637명 그리고 어린이가 541명이었다.
이민자의 대부분은 교인이었지만 공부를 하기 위해 떠난 젊은이, 향리와 구한말의 해산군인, 남의 집에 살던 머슴, 부두 노동자, 건달 등도 대열에 끼어 있었다. 그들은 사탕수수농장에서 하루에 10여시간씩 일하며 69전을 받으며 생활했다.
그러나 하와이 이민은 시작 3년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 체결로 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면서 일본이 한국인의 이민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하와이 동포들은 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기 위해 1903년 8월 7일 호룰루루에서 신민회를 결성한다. 이 신민회는 훗날 미주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된다.
한편 고국산천을 떠난 지 반세기 되는 1952년, 그들은 하와이로 떠난 출항지 인천에 미국의 MIT대학과 같은 대학이 설립될 것을 소망하며 15만 달러의 기금을 조국에 보내왔다.
마침내 1954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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