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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125년 전 강화에서 초심을 찾자
글. 임성훈 본지 편집장

세계적인 명문 축구클럽인 ‘레알 마드리드’나 ‘첼시’가 창단되기도 전에, 우리나라에 상당한 실력의 축구팀이 존재했다면 믿어지시나요?
우리나라 근대 축구 도입 시기에 얽힌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무대는 인천 강화입 니다. 지난 2007년 인천강화문화원은 한국 근대 해군 창설과 관련한 사료를 조사하던 중 뜻밖의 보물(?)을 발견합니다. 성공회대학교 자료관에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보관되어 있던 여덟 줄 짜리 영문 문서와 한 장의 빛바랜 단체 사진이었습니다.
이 문헌은 영국인 시드니 J. 파커가 1901년 3월 21일, 영국 성공회가 발행하던 잡지 「모닝캄 (Morning Calm)」의 편집자에게 보낸 기고문입니다. G. A. 브라이들 목사에게 수년간 지도를 받은 ‘강화학당 축구팀’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강화학당 학도들의 ‘실력’을 평가한 대목입니다.
“선수들은 아주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조금만 더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다면 잉글랜 드 리그 진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이 문헌이 축구계와 역사학계에 던진 반향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이전까 지 한국 근대 축구의 정식 보급 연도는 1904년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서울 관립 외국어학교가 축구를 체육 과목으로 채택한 시점을 기준으로 삼았던 탓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최소 3년 앞서 강화에 수준 높은 조직력을 갖춘 축구팀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한국 축구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의미 있는 발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는 아직 강화학당 축구팀의 역사가 단 한 줄도 소 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시는 물론 국가유산청 등 정부 기관의 간행물에서 이 사료를 비중 있게 다루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당시 강화의 학도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척박한 환경 속에서 공을 찼을 것입니다. 난생처음 접하는 축구 기술을 익히기 위해 그들이 흘렸을 땀방울은 감히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실력 을 키워 외국인 저널리스트에게 인정받기까지 감독과 선수는 투지와 열정,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덧 12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이 남긴 상처가 쉽사리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의 축제는 토너먼트를 거치며 결승을 향해 치닫고 있지만, 우리의 월드컵은 예전 같은 흥이 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중도에서 탈락하더라도 세계 최고 팀들이 펼치는 치열한 접전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 월드컵이건만 이번 대회는 그마저도 무미건조하게 다가옵니다. 단지 32강 토너먼트조차 밟지 못한 부끄러운 성적표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축구계의 난맥상에 실망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요즘, 이 땅에 처음 축구라는 씨앗이 뿌려졌던 시절의 강화로 눈을 돌려봅니다. 거친 맨땅에서 맨발로 드리블하고 슛을 쏘아 올리던 125년 전 의 강화, 화려한 겉치레보다 본질에 충실했던 그 순수의 시공간에서, 한국 축구의 무너진 초심 을 다시 찾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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