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인천에서 인천으로 -쇠 하나로
불과 바람 사이,
여든 해의 쇳소리
영흥도 마지막 대장장이, 이규산
‘후왕─, 후우우─’ 화로가 숨을 쉰다. 쇠가 달아오르고 겨울 공기가 뒤틀린다. ‘탕─’ 망치가 내려앉는다. 불티가 사방으로 튀고, 쇠 달구는 냄새가 대장간을 채운다. 손가락 두 개 없는 왼손이 다시 쇠를 집어 든다. 팔순이 넘은 나이, 영흥도의 마지막 대장장이는 오늘도 불 앞에 서 있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에이이미지 스튜디오


영흥도 외리, 섬의 마지막 대장간

갯벌마다 다른 호미. 백령도, 선재도, 영흥도, 대부도(왼쪽부터).
섬마다 삶도 다르다.
손이 기억하는 무게
갯벌마다 다른 삶
‘탕─, 탕─’ 영흥도 외리. 마을 깊은 곳에서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섬에서 아직 끊기지 않은 소리다. 몇 걸음 더 들어서자 쇠 타는 냄새가 바닷바람에 섞여 코끝을 찌른다. 그 길 끝, 낡은 철문 위에 바랜 글씨의 간판이 걸려 있다. ‘영흥민속대장간’.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뜨거운 공기가 얼굴을 감싼다. 화로에서 피어오르는 열기, 벽에 빼곡히 걸린 망치와 집게들, 바닥에 깔린 쇳가루가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화로 앞에 앉은 한 노인이 쇠를 들어 올린다. 왼손에는 손가락이 두 개 없다. 그 손이 집게를 쥐고, 달아오른 쇠를 모루 위에 올려놓는다. 오른손의 망치가 잠시 멈췄다, 천천히 내려앉는다.
‘탕─’, 이규산, 이 섬의 마지막 대장장이. 그가 평생 불 앞에서 두드려 온 쇠의 무게다.
문이 열린다. 한 어민이 낡은 호미 하나를 내민다. 날은 무뎌졌고 손잡이는 오래 써서 헐겁게 흔들거린다. 이규산이 말없이 호미를 받아 든다. 무게를 가늠하듯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인다. “선재도 거지?” 어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작년에 여기서 맞춘 건데, 날이 많이 무뎌졌어요.” 장인이 대답 대신 작업장으로 몸을 돌린다.
화로에 쇠를 넣는다. 바람을 불어 넣자 ‘후왕─’ 불길이 거세진다. 검은 쇠가 서서히 빛을 바꾼다. 검붉었다 주황빛, 다시 노란빛으로. 호미를 집게로 꺼내 모루 위에 올린다.

쇠를 담금질하는 시간은 곧 그 자신을 담금질하는 것과 같은 시간이었다.
‘탕─, 탕─, 탕─’
망치가 내려앉을 때마다 불꽃이 튀고 금속이 울린다. 탄 내와 쇠 달구는 냄새가 뒤섞여 대장간을 메운다. 손가락 두 개가 없지만 집게를 쥔 손에는 흔들림이 없다. 어민이 작업대에 기대어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본다. 장인의 이마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지지직─’ 달아오른 쇠를 담금질하자 짧은 숨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쇳내가 겨울 공기를 타고 번진다. 그가 완성된 호미를 굳은살 박인 손바닥 위에 올린다. 손에 딱 감기는 무게다.
“선재도는 진흙이 고와. 이 정도가 손에 맞아. 영흥도처럼 자 갈 섞인 데는 이보다 무거워야 하고.”
어민이 호미를 받아 손에 쥔다. 말보다 표정이 먼저 반응한다. 같은 바다라도 갯벌은 다르다. 진흙의 결이 다르고 자갈의 굵기가 다르다. 그래서 호미의 크기도 무게도 달라진다. 이규산은 그 차이를 손으로 기억한다. 눈으로 쇠의 빛을 보고 손바닥으로 무게를 읽는다. 여든 해 가까운 시간, 그 감각은 빗나간 적이 없다.

그의 손은 가장 적당한 때를 안다.

열일곱부터 그의 손에 밴 쇠와 불의 향.
여덟 손가락으로 육십 년을 버텼다.
쇠보다 단단한 삶
여덟 손가락으로 켠 불빛
그 손은 또 다른 삶의 무게까지 기억한다. 사고는 한순간이었다. 손가락 두 개가 떨어져 나갔다. 왼손 검지와 중지였다.
1962년, 열일곱에 처음 망치를 들었다. 대부도 출신으로 국민학교만 마친 그에게 대장일은 먹고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중구 답동철공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후 화수동 홍성철공소에서 실력을 쌓았다. 군 제대 후 부평 한국베어링에 기능공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단조 기계가 돌아가는 현장, 그곳에서 사고가 났다.
회사는 관리직으로 옮기라 했다. 계속 일할 수 있다고. 그러나 그는 사직서를 냈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붕대가 감긴 왼손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손가락 두 개가 없는 손. 더는 쇠를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나 포기할 수 없었다. 대장일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고향 대부도로 돌아왔다. 드럼통으로 만든 화로 하나를 경운기에 싣고 온 동네를 돌았다. 오늘은 이 마을, 내일은 저 마을. 작두날을 갈고, 호미를 만들고, 낫을 벼렸다. 처음에는 집게를 쥐는 일조차 버거웠다. 손에 힘이 들 어가지 않아 쇠가 자꾸 흔들렸다. 밤마다 망치를 들었 다. 손바닥이 갈라지고 피가 났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증명해야 했다.
“안 하면 뭐 먹고살아. 해보는 수밖에. 그냥 한 거야” 왼손에 감각이 돌아왔다. 불의 온도를, 쇠의 무게를, 망치의 반동을 다시 몸에 익혔다. 꼬박 이 년이 걸렸다. 그제야 쇠가 다시 손에 붙었다.
인천 동구 송림동으로 갔다. 삼성철공소 간판을 걸었다. 직원이 일곱, 여덟, 많을 때는 열 명까지 있었다. 배 짓는 연장을 만들고, 수도관 밴드를 대고, 땅을 뚫는 쇠까지 손을 댔다. 일이 잘 풀렸다. 그러다 IMF가 닥쳤다. 하도급 대금이 끊기고 빚이 쌓여갔다. 간신히 마련한 집을 팔아 직원들 월급을 주었다.
“이 사람들도 다 식구가 있어. 어떻게든 버텨서 함께 살아가야 했어.”
집은 다시 장만하면 되지만 사람은 한번 잃으면 끝이다.
2001년, 영흥도로 들어왔다. 아내의 고향이었다. 바람이 세고 바다가 가까운 자리에 작은 대장간을 열었다. 섬사람들이 찾아왔다. 갯벌을 파는 호미, 밭을 가는 낫, 풀을 베는 작두….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쇠를 주물렀다. 스물다섯 해가 지났다. 불 앞에서 버틴 시간만큼 삶도 단단해졌다. 그가 만든 호미들은 오늘도 서해의 갯벌 한복판에서 누군가 하루를 버티게 한다.

거센 불과 거친 쇠를 길들이는 일이 그의 삶이다.

그를 찾아 수시로 대장간의 문이 열린다.
국보를 일으킨 손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2008년 2월 10일 밤, 불길이 숭례문을 집어삼켰다. 600년을 버텨온 목조 건축이 붉은 화염에 휩싸여 무너졌다. 새벽까지 타올랐다. 국보 1호가 한순간 폐허로 남았다. 복원은 전통 방식 그대로 진행돼야 했다. 못 하나까지 허투루 할 수 없었다.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드린 쇠못, 하 나하나가 필요했다. 국가유산청은 전국을 뒤져 세 명의 장인을 찾았다. 그중 하나가 이규산이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이규산은 서울과 영흥도를 오갔다. 주중에는 섬에서 못을 만들고 주말이면 복원 현장으로 달려갔다. 숭례문 마당에 차려진 임시 대장간. 사람들이 둘러선 가운데 그는 쇠를 달구고 못을 벼렸다. 수십 년 몸에 밴 손놀림 그대로였다.
복원 작업에 참여하고 3년이 흘렀다. 2013년, 숭례문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보았다.
“그때가 가장 자랑스러웠어요. 내 평생에.”
이규산은 영흥도로 돌아왔다. 국보를 세운 손으로 다시 바지락 호미를 잡았다. 섬사람들이 찾아왔다. 날이 무뎌진 낫과 부러진 작두날, 굽은 쇠스랑을 들고. 그가 화로에 불을 지핀다. ‘후왕─, 후우우우.’ 쇠 달구는 냄새가 포구까지 낮게 번져간다.
시간은 흐른다. 십 년 전, 그는 어깨에 인공관절을 넣었다. 수술대에 오르기 전 의사에게 물었다. “이 팔로 얼마나 일할 수 있습니까?” “팔십 프로는 가능합니다.” “그럼 합시다.”
바로 수술을 받았다. 회복 기간도 길게 잡지 않았다. 몸이 버티는 만큼만 쉬고, 다시 불 앞에 섰다.
어느덧 그의 시간이 저물어 가고 있다. 평생 몸으로 익힌 기술을 전수하고 싶지만 배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
“중고등학교는 삼 년만 댕기면 졸업하잖아. 근데 대장 일은 수십 년을 해도 졸업을 못 해. 평생 연구해야 돼. 나는 뭔가는 배우고 있어. 지금도.”
팔순이 넘은 대장장이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팔순이 넘은 대장장이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앞으로의 시간을 묻자 그가 잠시 말을 고른다.
“한 이삼 년쯤? 내 나이가 여든이 넘었는데 뭘 장담하겠어. 근데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니까 좀 건강해지는 것 같고. 이 나이에 가만히 있으면 금방 뻐드러져 버려. 자꾸 움직여야지.”
그래서 오늘도 그는 불을 켠다.
“이대로 죽이기엔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어.”
겨울 해가 기운다. 대장간 창문 틈으로 붉은빛이 새어 나온다.
‘탕─, 탕─, 탕─’ 망치 소리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팔순이 넘은 손이 여전히 쇠를 두드린다. 국보를 다시 일으켰고, 호미도 만들었고, 삶도 버텨냈다. 그 손은 기억한다. 불의 온도와 쇠의 무게를, 누군가를 위해 망치를 드는 이유를. 앞으로 이삼 년, 어쩌면 그보다 더 짧을지도 모른다. 화로 속 불씨가 낮게 숨을 쉰다. 불빛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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