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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초일류도시를 가다⑥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이스턴 하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이스턴 하버
한 지역의 재생 방식은 지역의 역사성, 장소성, 인구·사회적 요인, 문화적 요인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이스턴 하버Eastern Harbour District의 도시재생도 그러한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스턴 하버 도시재생 사례를 통해 세계 초일류도시로 성장을 꿈꾸는 인천에 던지는 시사점을 들여다본다. 인천만의 얼, 혼, 빛을 투영해 글로벌 거점으로 멋지게 도약하길 바란다.
글 김천권(인하대학교 명예교수)
세계 초일류 국가와 도시로 꼽히는 이유
첫째, 네덜란드와 암스테르담이 왜 세계 초일류 국가이자 도시인지 살펴보자. 우리에게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선사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히딩크의 나라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는 국가와 도시가 수행해야 하는 기능과 관련해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연 나라다. 인류 역사에서 오랫동안 국가는 전쟁 기제(war machine) 역할을, 도시는 성장 도구(growth tool) 기능을 수행해 왔다. 그래서 도시를 통해 재정과 군자금이 확충되면 국가는 영토 확장을 위해 이웃과 전쟁을 치르는 과정이 역사에서 빈번히 목격된다. 그런데 이런 개념에서 벗어나 국가가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원리를 최초로 이행한 국가가 바로 네덜란드다. 즉 네덜란드는 국가는 더 이상 전쟁 기제 역할을 수행할 이유가 없으며, 대신에 물산장려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중상주의를 도입한 최초의 국가다. 17세기 유럽 사회가 신교와 구교 사이 종교전쟁에 휘말려 있을 때, 네덜란드는 종교적 관용을 수용하며 일찍이 다문화 사회를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 즉 어떤 종교를 믿건 개인의 선택이며, 이런 종교적 관용은 당시 스페인에서 박해를 받던 유대인을 대거 네덜란드로 이주하게 만든 주요 요인으로 작용, 네덜란드 상업 발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다음으로 네덜란드는 지방분권화를 의도적으로 추진한 최초의 국가다. 그래서 정치는 헤이그, 경제는 암스테르담, 무역은 로테르담 등으로 분리돼 각 도시가 기능적 분권화를 통해 지역 발전을 추진했다. 이러한 국가의 경제성장 기제로 역할, 중상주의 발달, 종교적 관용과 지방분권화를 기반으로 암스테르담은 자유주의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해 신학문의 중심지, 근대사상과 철학의 발상지가 됐다. 17세기에 암스테르담에는 약 400개의 서점이 있었고, 17세기 출판물의 약 30%가 암스테르담에서 출간된 것으로 전해진다. 암스테르담이 자유주의 사상과 신학문의 중심지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바로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0~1650)의 암스테르담 유학을 들 수 있다. 지금은 신학문과 과학 기술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가야 한다고 하는데, 17세기에는 새로운 사상과 학문·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암스테르담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더 이상 책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데카르트는 새로운 사상과 학문을 접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향했고, 이후 종교전쟁에 참여해 독일 라인강 변에 위치한 울름Ulm이라는 도시를 여행하던 중 병영에서 자기 삶의 길을 밝혀주는 꿈을 꾸게 된다. 데카르트는 여기서 삶의 목표를 학문에 두기로 하고, 이후 암스테르담에 오랫동안 거주하며 철학 연구에 몰두해 근대 철학과 사상을 탄생시켰다.(김천권, 2021) 이제 왜 네덜란드와 암스테르담이 초일류 국가와 도시인지 이해가 되었으리라.
암스테르담 이스턴 하버의 도시재생 사례
암스테르담 이스턴 하버는 16세기부터 항만 교통 중심지로 발달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일반 화물선을 처리하도록 설계돼 자동화·대형화를 요구하는 현대 항구의 요건을 따라가지 못했다. 항만은 1950년대 들어 급속히 쇠락했고, 1979년을 마지막으로 300톤 이상 대형 화물선의 운항이 끊겼다.(한겨레, 2019) 항만 관련 기업과 시설은 서부항 등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거나 문을 닫아 항구와 공업 지역으로서의 기능이 쇠퇴하면서 재개발 필요성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이스턴 하버 일대 재개발사업이 시작됐고, 1974년 도시계획 범위 안에 이스턴 하버 지역의 계획안이 포함되면서 이스턴 도클란트Eastern Dockland·에이뷔르흐IJburg·오스테르독Ossterdok 세 지역으로 나눠 개발이 추진됐다.(권영상·조상규, 2011)
개발 초기 이스턴 하버 지역에 대한 주거 중심 수변 개발 승인과 함께 개발 사전 작업을 암스테르담시 정부 차원에서 수행했다. 1980년부터 1985년 사이 에이만 주변 개발계획이 수립됐고, 시 당국은 1983년부터 현상 설계를 진행하는 등 지역 개발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암스테르담 중앙역 건설로 도심 연결성과 교통 접근성이 양호해지면서 새로운 지역 개발의 가능성을 띠게 됐다. 1984년에서 1988년까지 지역과 중앙정부에서 개발에 관련한 문제를 조율하는 등 사전 작업이 완료된 후 1988년 관민 협의체에 의해 개발이 시작됐다.
이스턴 하버 개발로 촉발된 주거 중심 복합용도개발 경향은 이후 이스턴 하버를 포함한 에이만 지역 수변 개발의 큰 방향으로 자리 잡게 됐다. 암스테르담 독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섬들의 특성을 반영한 인공섬을 조성해 항만 지역 내 주거·문화 지역을 독립적이면서도 복합적인 네트워크로 조직했다는 점이 여타 항만 개발과는 차별화된 지점이다. 또한 도심 항만 기능과 더불어 수변 문화·레저 공간, 주거단지의 상호 보완적 계획을 수립하고, 수변 공간에 보행 접근 체계를 구축해 수변 접근성을 강화함으로써 지역 활성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또 기존 산업철도 경계에 노면전차와 보행로, 자전거도로, 보행·입차 교차로를 적극 도입해 항만으로 단절된 지역 간 연계를 도모한 점에서 항만 지역 도시재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유재윤 외, 2013)
암스테르담 이스턴 하버 수변 공간 개발의 주요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자동차 중심이 아닌 보행자 중심 도시개발로, 주차는 도로를 이용하기보다는 대부분 건물 안쪽이나 지하를 이용하도록 했다. 둘째, 수변 지역에 개방성을 부여하고, 구도심과 교외 부두 지역의 연결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차도로, 메트로 터널 등의 교통수단을 복합적으로 구성했다. 셋째, 기존의 오래된 환경적·물리적요소는 지역의 역사성을 기념할 수 있는 것으로서 가능한 한 남겨서 보존했다. 넷째, 물리적 공간 계획에서 큰 가로수길이나 좁은 도로, 광장 등을 디자인하는 데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계획 방법을 적용했다. 다섯째, ‘물’과 ‘땅’이 가진 속성을 잘 표현하면서도 그들 간 대조적인 성질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변 공간의 통합화보다는 서로 다른 콘셉트를 가진 도시 공간이 각자의 독자성을 발휘하고, 그것들이 모여 다양한 개성을 지닌 아키펠라고archipelago, 즉 다층의 인공 다도해를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이스턴 하버 개발에는 다양한 분야 건축가들의 실력을 보여주는 경쟁과 실험의 공간을 제공하며 다채로운 외관의 저층 주거지를 조성했다.(하지영, 2010)
이스턴 하버의 도시재생 사례는 항만 지역 내 주거와 문화 지역을 독립적이면서도 복합적인 네트워크로 조직해 눈길을 끈다.
‘세계 초일류도시’ 인천을 향한 시사점
암스테르담 이스턴 하버 도시재생은 ‘제물포 르네상스’를 통해 초일류도시를 꿈꾸는 인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인천과 암스테르담의 지정학적 특성을 비교해 보자. 암스테르담 이스턴 하버 지구 면적은, 에이뷔르흐를 제외한 오스테르독과 이스턴 도클란트 재개발 지역은 육지 1.75km2, 공유수면 2.15km2 등 3.90km2에 이른다.(한겨레신문, 2019) 제물포 르네상스의 사업 대상지인 인천 내항은 내수면적 2.76km2, 배후 항만 단지 면적 0.429km2로 총 3.189km2를 포함하면 여의도 면적(2.9km2) 못지않은 거대 공간이다. 그리고 지정학적 위치에서 암스테르담은 북해를 배경으로 하고, 인천은 동북아 시대에 서해를 품고 있다. 인구학적 측면에서는 암스테르담 인구는 114만 명(2018년)으로 300만 인천에 한참 뒤져 있다. 인구학적 측면과 지정학적 측면 모두에서 인천은 암스테르담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인천은 21세기 동북아 시대에 지정학적으로 최고의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입지적 강점을 최대한 살려 근대 사회에 문을 연 암스테르담 같은 글로벌 중심 도시로 부상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인천 내항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제물포 르네상스는 이런 큰 그림의 핵심 공간으로,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잘 수행되는지에 인천,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미래 경쟁력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암스테르담 이스턴 하버 도시재생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자. 그렇다고 똑같이 복제 답습하지는 말자. 고기 잡는 방법은 배우는데 거기에 인천의 얼, 혼, 빛을 투영해 인천만의 내생적 성장 DNA를 발굴하자. 스트라이크 존은 좁다. 그런데 투수는 좁은 스트라이크 존에서 원하는 구석을 파고들어야 최고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글로벌 사회에서 도시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좁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자신만의 결정구를 개발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제물포 르네상스가 다가오는 동북아 시대의 글로벌 거점으로 멋지게 도약하는 결정구로 작용해 21세기 초일류도시 인천이 되기를 기대한다.
참고 문헌
권영상·조상규(2011) 수변도시 재생에 대응하는 수변경관 조성방안 연구, 건축도시공간연구소, AURI-기본-2011-5
김천권(2021), 진화의 도시, 푸른길
유재윤 외(2013) 경제기반 강화를 위한 도시재생 방안, 국토연구원
하지영(2010) 외국의 친수공간 활용사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수변개발 사례, 저널 물 정책·경제, 14권: 103-117
한겨레신문(2019) 부수지 않고 어우러졌다… ‘항구의 유산’ 품은 암스테르담, 2019년 10월 24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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