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기획 _ 승봉도 수국 축제
주민들의 손끝에서
피어난 꽃길
승봉도 자축
수국 축제
파도 소리가 전부일 줄 알았던 작은 섬에 환한 수국이 하나둘 피어났다. 거주민이 200명이 채 안 되는 승봉도. 청년들이 떠난 자리에 잡초만 무성하던 그 섬, 남은 사람들이 직접 꽃길을 만들었다. 주민들의 거친 손이 흙을 고르고 묘목을 심어 가꿔낸 꽃길.
마침내 다시 피어난 작은 섬, 승봉도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글. 윤은혜 본지 편집위원 사진. 이재형 포토디렉터

승봉도에서 피어난 푸른 수국

승봉도로 향하는 배, 가득한 승객이 부두에 활기를 더한다.
고요함이 내려앉은 섬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을 더 달리다 보면 다다르는 섬, 승봉도. 서해 바다 한가운데 자리한 이곳은 오래전부터 조용한 섬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 청년들은 일자리와 미래를 찾아 섬을 떠났고, 남은 건 200명이 안 되는 주민들과 바닷바람이 전부였다. 섬에 오래 산 주민들은 지금도 옛 시절을 또렷이 기억한다. 한때 이 골목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새벽마다 고기를 손질하는 어부들의 손길로 부두가 북적였다.
이제는 어업으로, 농사로 그리고 간간이 찾아오는 관광객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이들. 섬 전체를 가득 채웠을 활기가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골목 어귀마다 잡초들만 한껏 키를 키우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작은 섬이지만, 이곳에서 평생의 추억을 쌓아온 이들에게 승봉도는 지키고 싶은 고향이었다.

수국으로 만든 코사지

행사에 참여한 이들이 꽃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꽃보다 먼저 핀 마음
“이렇게는 안 되겠다. 우리가 섬을 살려보자!”
거창한 마음으로 시작하진 않았다.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나누기 시작한 말들이 씨앗이 됐다. 어떻게 하면 섬을 살릴 수 있을까, 관광객을 불러들일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머리를 맞댄 끝에 나온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꽃이었다.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길.
주민들은 팔을 걷어붙였다. 잡초로 뒤덮인 동네 구석구석을 정비했고, 자비를 털어 수국 묘목을 사 왔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고될 법도 하지만, 다시 살아날 섬에 대한 기대감에 열정만이 가득했다. 꽃이 만개한 작은 섬마을. 그들은 그 모습을 그리며 삽을 들었다.
그 간절함은 인천고령사회대응센터에도 닿았다. 센터는 주민들과 함께하기로 했고, 원예관리사 양성 과정을 개설해 전문 교육을 도왔다. 열다섯 명의 주민이 원예관리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거칠게 굳은 손이 이제는 여린 꽃을 다루는 손이 되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애써 심은 묘목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걸 지켜보는 일은 마음 쓰렸다. 흙과 씨름하고, 계절과 싸우며 하나씩 다시 심었다. 지금의 꽃들은 그 실패를 딛고 살아남은 것들이다.
봄마다 여름마다 주민들의 손길이 닿은 자리에 수국이 피어올랐다.
적적하기만 하던 풍경이 조금씩, 화사하게 변하고 있었다.

축하 공연을 즐기는 주민들

공연마다 환호와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마음이 만든 꽃밭
봄마다 여름마다 주민들의 손길이 닿은 자리에 수국이 피어올랐다. 파란 수국, 빨간 수국, 보랏빛 수국들이 길 따라 인사하기 시작했다. 적적하기만 하던 풍경이 조금씩, 화사하게 변하고 있었다.
주민들의 변화를 곁에서 지켜보던 기관들도 힘을 보탰다. 인천관광공사 산하 인천섬발전지원센터와 인천고령사회대응센터가 공동 업무 협약을 맺으며 섬의 미래와 주민들의 건강한 노후를 함께 응원하기로 한 것이다. 혼자였다면 버거웠을 일이, 여럿이 모이자 단단한 모양을 갖춰갔다.

시원한 초여름과 닮은 승봉도 마을 풍경

섬 곳곳에 알록달록한 수국이 피었다.

꽃 향기가 가득했던 행사장
섬이 다시 피어난 날
첫 번째 자축 수국 축제가 열린 이날, 섬으로 향하는 배 안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온 주민들과 지인들,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까지. 배가 선착장에 닿고, 섬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길수록 수국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축제를 풍성하게 만든 건 꽃만이 아니었다. 주민들이 직접 준비한 풍물놀이가 흥을 돋웠고, 색소폰과 바이올린 선율이 꽃길 사이로 흘렀다. 이날을 기다렸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는 주민들과 이들을 바라보며 시원하게 웃는 관광객들. 오랫동안 적막했던 섬에, 오랜만에 사람 냄새가 가득했다.
섬 곳곳에는 제각기 아름다운 색상으로 활짝 핀 수국들이 이들을 맞이했다. 또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은 수국들은 개화 준비에 분주했다. 마치 승봉도처럼, 아직 더 피어날 것들이 남아 있다는 듯이 말이다.
여느 꽃 축제와 겉모습은 닮아 있었지만, 그 안에는 꽃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했던 승봉도 자축 수국 축제. 올여름 승봉도에 핀 수국은 꽃이 아닌 주민들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이제 섬의 새로운 계절을 열어가고 있다. 꽃길을 만든 사람들도, 여전히 이 섬에서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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