从“炸克酱面”到“炸酱面”
작장면이 짜장면이 되기까지

周禧丰
仁川华侨协会副会长
주희풍
인천화교협회 부회장
炸酱面是用炒过的酱拌面条吃的美食,按照韩文对汉字的译法,应为“炸克酱面(CHAK JANGMYEON)”,或者更准确地来说应该是“碴酱面(CHAL JANG MYEON)”。很多人可能难以想象早期的“炸克酱面”是如何变成今天的“炸酱面”的,但有一点可以肯定的是,我们无法绕开“乌冬面”去讲述这个过程。
기름에 튀겨낸 장(醬)을 국수에 비벼 먹는 ‘炸醬麪(짜장면)’을 한국의 한자로 하면 ‘작장면(CHAK JANGMYEON)’보다는 ‘찰장면(CHAL JANG MYEON)’이 더 정확한 표기다. 초기의 ‘작장면’이 현재의 짜장면이 되기까지 상상이 잘 안 되겠지만 우동(烏冬麪)을 빼고 논할 수는 없다.
炸酱面在2006年7月被文化观光部选为了代表韩国的“100种民族文化象征”,说它早已超越饮食范畴,融入了韩国人的生活与文化中也不算夸张。还有一群人对这样的“文化符号”有着一样的共鸣,那就是“老北京人”。北京炸酱面是享誉国内外的中国四大名面之一,在中国近现代文学泰斗鲁迅(1881-1936)和老舍(1899-1966)的作品中也时常出现。所以我们可以说,炸酱面是韩国人和中国人都热衷的美食。
짜장면은 2006년 7월 문화관광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100대 민족문화상징’으로 선정된다. 단순한 음식 그 이상으로 한국인의 삶과 문화가 녹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문화코드’에 공감하는 중국인들이 있는데 그것을 바로 ‘라오베이징(老北京)’이라고 하는 북경토박기들이다. 중국 4대 국수 (中國四大麪條) 명성을 뽐내는 북경 짜장면은 중국 근현대 문학의 거장 루쉰(魯迅 1881~1936)과 라오서(老舍1899~1966) 등의 작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 짜장면은 과연 한국과 중국이 공유하는 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1882年《中朝商民水陆贸易章程》签订后,大量华商(从事贸易业的中国人)和华农(从事农业的中国人)进入了当时的朝鲜。20世纪调味料被开发出来后,中餐开始风靡海外。当时已成为国际化城市的仁川也包括其中,以“包办酒席”,也就是有能力承办宴会、派对等活动并主打北京料理的高级中餐店如雨后春笋般出现。
同一时期,北京一名为“灶温”的茶馆开发出了炸酱面。现在的“炸酱面博物馆”前身“共和春”也开始经营炸酱面,只不过彼时还不像今天这般普及,换句话说,还没有形成前面提到的“文化符号”。当时中餐馆的招牌是“乌冬面”,不是炸酱面,炸酱面的普及要回溯到1948年炸酱的原料——酱实现工厂量产的时候。
1882년 조중상민수륙무역장정(中朝商民水陸貿易章程) 체결 이후 화상(華商, 무역업에 종사하는 중국인)과 화농(華農, 농업을 경영하는 중국인) 들이 속속 조선에 들어온다. 조미료가 만들어진 20세기가 되면서 중국요리는 유행하듯이 세계로 퍼진다. 이미 글로벌 도시인 인천에도‘포판회석(包辦會席)’ 지금으로 말하면 연회나 파티 등의 행사 대행이 가능한 북경요리(北京料理)를 전문으로 하는 고급 중국요리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같은 시기 북경 ‘짜오원(灶溫)’이라는 다관(茶館)에서 짜장면이 탄생하고 현재 ‘짜장면 박물관’의 전신인 공화춘(共和春)에서도 짜장면을 팔았지만, 지금처럼 대중적이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위에서 언급한 ‘문화코드’가 생성되기 이전이다. 당시 중국집을 대표하는 음식은 ‘우동’이지 짜장면이 아니었다. 짜장면의 대중화는 1948년 짜장의 원료인 ‘장(醬)’을 공장화하면서 점차 시작된다.
进入二十世纪后,普罗大众最熟悉的面条要从乌冬(うどん)开始说起。韩中日三国的乌冬就像当时那个时代背景的讲述者一样,共同存在着。乌冬作为非常受大众欢迎的简餐,出现在韩国的“面馆”、中国的“乌冬店”还有日本的“乌冬店”,一度成为反映物价的指标。究其原因,最主要的可能是因为它价格低廉,属于快餐型热食。当时可能在面条上浇两勺提前准备好的汤水就能称之为乌冬。
今天在韩国谈到“炸酱面店”,则说的十有八九是中餐馆,但论及“中式乌冬面店”,可能没有多少人听过。有趣的是时间退回到20世纪40年代以前,情况刚好相反,因为那时候中餐馆卖的最多的还是乌冬面,不是炸酱面。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가장 대중적인 국수는 우동(うどん, 饂飩)부터 시작한다. 당시 시대 배경을 반영하듯 한·중·일의 우동이 공존하기 시작한다. 간편식으로 대중들에게 매우 인기였던 우동은 한국의 ‘국숫집’, 중국의 ‘우동집’, ‘일본의 ’우동집’에서 팔았다. 물가의 지표가 될 정도로 우동을 즐겨 먹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하면서도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 가 아닐까 싶다. 당시에는 미리 준비한 한 솥의 국물을 국수에 말면 우동이라고 했었나 보다.
지금 한국에서 ‘짜장면집(炸醬麪館)’이라고 하면 통속적으로 중국음식점을 가리키지만 ‘중국 우동집(中國烏冬麪館)’이라고 하면 매우 생소하다. 하지만 1940년대 이전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오히려 정반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요리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음식은 지금처럼 짜장면이 아닌 우동이었기 때문이다.
留心观察婴儿潮时期出生的在韩华侨会发现,他们习惯于把“炸酱面店”称为“乌冬店”或者“乌冬面馆”,问他们“乌冬店”是什么,他们会告诉你“炸酱面店就是乌冬店。”以前名叫“胡饼家”的糖饼店也卖乌冬,1930年的时候一碗乌冬卖12~15钱,饭馆里的烧酒卖8钱,浴池一人收费5钱,一升大米卖13钱。
在韩华侨经营的中餐馆卖的乌冬被华侨称为“打卤面”。这是一种在中国无人不知无人不晓的家常面,分为汤水浓稠的混卤和清鲜的清卤两种,前者在中国比较流行,而后者更符合韩国人的口味。打卤面的特点是提前熬煮一锅汤,待吃的时候在刚出锅的面条上浇上一勺即可,所以只要3~5分钟,也就是煮开面条的时间就可以完成。之后通常加入黑木耳和鸡蛋,但在韩国加黑木耳的做法极为罕见。
베이비붐 세대의 한국 화교들의 언어습관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짜장면집’을 ‘우동집’ 아니면 ‘우동가게’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우동집’이 뭐냐고 그들에게 물어보면 “‘짜장면집’이 ‘우동집’이야.”라고 말을 한다. 예전에는 ‘호병가(胡餠家)’라고 하는 호떡집에서도 우동을 팔았으며 1930년 우동의 가격은 12~15전(錢) 있었고 식당에서 파는 소주 가격이 8전(錢), 목욕탕 요금이 5전(錢), 흰쌀 1되가 13전이었다.
한국의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요리점의 우동을 화교들은 따루면(打滷麪)이라고 부른다. 따루면을 모르면 중국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 가장 즐겨 먹는 국수이다. 중국의 따루면은 국물이 걸쭉한 따루면과 국물이 맑은 따루면으로 나눈다. 중국에서는 주로 걸쪽한 국물의 따루면을 즐겨 먹는 반면 한국에서는 맑은 국물의 따루면을 즐겨 먹는다. 따루면의 특징은 국물을 한솥 끓여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삶아낸 국수에 국물을 한 국자 붓는 방식이라서 국수를 삶은 시간 3분에서 5분이면 조리가 가능하다. 그리고 목이버섯과 달걀을 푸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데 한국에서 따루면은 목이버섯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打卤面是最热乎的快餐类美食。当时做一碗打卤面的速度比现在更快,其秘密就在于面条。很多人认为那个时代没有饭馆用的面条机,认为韩国的中餐馆用的也是手工方式,但事实上完全不是这样。手工面条只能在首尔和仁川等地几家高级中餐馆见到,而且是在规模堪比宴会的高端流水席上。一直到20世纪中期,韩国的中餐馆用的都是“干面”,也就是中国人所说的“挂面”。这是根据面条挂在架子上的模样而得名的面,无论是“挂面”还是韩国人熟悉的“干面”,字面上都是“悬挂”的意思。挂面在当时是价格最便宜、制作起来最简单的一种面。只有吃炸酱面这种稍微复杂一点面,人们才会和面、打鸡蛋,再用刀切出面条,也就是中国人所说的“手擀面”,约等于韩国的“刀切面”。彼时炸酱面还是热门程度远不如现在的高级面条。
따루면은 가장 따듯하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다. 당시 따루면을 지금보다 빨리 조리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국수 때문이다. 식당용 면 뽑는 기계가 없었던 시절 한국의 중국요리점에서는 소위 말하는 수타의 방식으로 면을 뽑는다고 생각들 하는데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수타 방식으로 면을 뽑는 곳은 서울과 인천 등에 있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몇몇 중국요리점뿐이었다. 그것도 연회 정도의 고급 코스요리(流水席)에서만이었다. 20세기 중반까지 한국의 중국요리점에서는 ‘건면’을 사용했다. ‘건면’은 중국어로 ‘꽈미옌(掛麪)’이라고 한다. 막대에 걸려 있는 모습을 따다 ‘과미옌’ 즉 걸려있는 면이라고 해서 ‘건면’이라고한다. ‘건면’은 당시 가장 저렴하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면이었다. 짜장면 정도를 먹어야 반죽에 달걀을 깨놓고 칼로 썰어 국수를 만든다. 이러한 국수를 중국에서는 ‘서우간미옌(手擀麪)’이라고 하고 한국의 칼국수면이 되겠다. 당시 짜장면은 지금처럼 덥지 않게 먹는 고급 국수였다.
韩国的中餐馆还有一种面,是“郁闷的时候吃”的郁面,华侨们称它为“温卤面”。温卤面是前面提到在中国比较受欢迎的混卤面的一种,究竟为何从“温卤面”被叫成“郁面”还不得而知,但它里面的黑木耳和蛋花都完好地保留了混卤面的特点。据推测,可能是因为温卤面是山东烟台独有的面条,人们单用它的名字来区分清卤面和混卤面而已。不管怎么样,由于清卤面更符合韩国人的口味,温卤面没能成为在韩中餐店的招牌,虽在菜单中却少有人问津,与乌冬面的命运刚好相反。
한편, 한국의 중국요리점에는 “우울할 때 먹는다.”라는 별명을 가진 울면이 있다. 울면은 화교 사회에서 ‘원루면(溫滷麪)’이라고 하는데 원루면은 앞에서 언급한 중국에서 즐겨 먹는다는 걸쭉한 국물의 따루면이다. ‘원루면’이 어쩌다가 ‘울면’으로 부르는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목이버섯이 들어가고 달걀을 푼 것이 걸쭉한 국물 따루면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원루면은 산둥 옌타이에만 있는 국수지만 걸쭉한 국물의 따루면과 맑은 국물의 따루면을 구별 짓기 위해 이름만 가져다 쓴 것 같다. 어찌됐건 한국에서는 중국과 달리 걸쭉한 국물보다는 맑은 국물의 국수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울면은 중국요리점을 대표하는 음식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메뉴에는 있지만 식객들이 그리 찾지 않는, 우동과 운명이 뒤바뀐 셈이다.
20世纪中期以后炸酱面的酱实现了量产,加上餐馆用的面条机普及、白糖被大量生产出来,炸酱面的人气开始火速蹿升,制作速度也开始快过乌冬面和打卤面。慢慢地,炸酱面开始取代后两者,产生划时代的变化。在面条上放卷心菜丝、胡萝卜、黄瓜、萝卜等蔬菜,再用加入猪肉一起翻炒的酱拌匀,一碗类似混卤面的炸酱面就诞生了。人们会在仅就着猪肉翻炒的酱中加入切碎的洋葱、白菜和南瓜等,然后倒入一碗水和淀粉,熬煮出一锅浓稠的炸酱面酱料。舀一勺放在用面条机做出来的面条上,就可以轻松轻松地完成一碗炸酱面,过程不足5分钟。这样做出来的就是现在普及的炸酱面版本。这一时期原来的干拌炸酱面被称为“干炸酱面”,把炸酱面的名号让给了普及版,自此炸酱面和干炸酱面的命运也反了过来。
20세기 중반 이후 짜장면의 장(醬)이 공장화되면서, 식당용 면 뽑는 기계가 보급과 함께 여기에 설탕까지 대량생산이 되면서 짜장면의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인기 메뉴이다 보니 짜장면의 조리 속도가 우동 따루면보다 빨라진다. 점점 우동 따루면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짜장면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채 썬 날 양배추, 당근, 오이, 무 등을 면 위에 얹고 돼지고기와 볶아낸 장(醬)과 마르게 비벼 먹는 짜장면이 걸쭉한 국물의 따루면처럼 된다. 돼지고기와만 볶아내는 장(醬)에는 잘게 썬 양파와 배추, 호박 등이 들어가고 여기에 물을 붓고 전분을 첨가하여 걸쭉하게 한솥 끓여내어 둔다. 그리고 기계로 뽑은 삶아낸 면 위에 한 국자 얹으면 완성이다. 이 과정은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보급형 짜장면이 탄생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기존의 마르게 비벼 먹던 짜장면은 ‘간짜장면(乾炸醬麪)’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되면서 그 이름을 내준다. 결국 짜장면과 간짜장면의 운명 또한 뒤바뀐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