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미소
-
다시 인천아리랑을 들으며
다시인천아리랑을들으며글. 임성훈 본지 편집장김훈 작가는 19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왔을 때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댄스음악의 전성시대에서 대중음악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그의 산문집에서 이 대목을 읽으며 격하게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올드팝이나 포크송에 익숙한 세대가 현대적 감수성, 특히 아이돌의 칼군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온전히 공유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필자 또한 TV 채널을 돌리다 아이돌 음악이 나오면 반사적으로 패스하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작정하고 한번 들어보려고 TV앞에 앉았던 적이 있습니다. 음악 감상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 난리일까’라는 일종의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BTS 컴백 콘서트입니다.애써 귀를 활짝 열고 들어보니 젊은 세대의 음악이라고 해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는 듯했습니다. 중장년층의 마음을 두드리는 요소가 분명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세대 간의 문화적 격차를 단숨에 좁히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아리랑이 울려 퍼질 때였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선율이 전 세계로 송출되는 장면은 그날 공연의 백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또 하나의 아리랑을 소환했습니다.10여 년 전, 인천의 한 문화예술인을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그의 손에는 오선보 한 장 들려있었습니다. 음표와 박자, 화음까지 완벽하게 표기된 곡의 제목은 ‘인천아리랑’이었습니다. 인천 아리랑이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지만 인천아리랑이 뒤늦게 세상에 나온 배경은 더욱 귀를 솔깃하게 했습니다.그 시절 개봉한 영화
2026-04-20 2026년 4월호 -
인천의 얼굴
영원을 나눈 사람인천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이 바로 의 주인공입니다.일상 속 소중한 순간을 그림으로 담아 선물해 드립니다.지금, 여러분의 하루를 기록해 보세요.올해로 34년 차를 맞이한 부부입니다.얼마전 남편이 큰 수술을 마친 뒤 체력 증진 차 등산을 하기 시작했어요.저도 응원하는 마음으로 같이 다니곤 했죠.처음에는 체력적으로 지치기도 했지만, 집 근처 계양산에벚꽃이 만개한 걸 보니 힘듦도 잊고 데이트하는 것처럼 설레더라고요.이 사람과 함께 나이 든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임성희(계양구 임학동)인천의 얼굴, 인천 작가가 담습니다인천의 얼굴, 인천 작가 류성환이 담습니다.인하대와 홍익대에서 수학했다.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는 그의 작품은 단순하고 명확한 드로잉과 강렬한 색채감이 돋보인다. ‘인천 사람 초상화 로드 다큐’, ‘기울어진 삶’ 등 14회의 개인전을 개최하며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다음 호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입니다.‘인천의 얼굴’에 참여를 원하시는 시민 또는 독자께서는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해 주세요. 채택된 분에게는 특별한 그림을 선물로 드립니다.참여 신청 gmincheon@incheon.go.kr
2026-04-14 2026년 4월호 -
굿인이 만난 사람 - 박민오 기사
진심이 담긴동행‘반디콜’인천 장애인 콜택시박민오 기사글. 윤은혜 본지 편집위원사진. 이동진 포토디렉터저마다 목적지를 가진 차들이 분주하게 지나는 도로 위, 인천의 도로를 묵묵히 밝히는 작은 불빛이 있다. 교통약자들의 든든한 다리가 되어주는 인천 장애인 콜택시 ‘반디콜’이다. 4월, 장애인의 날을 맞아 단순한 운전을 넘어 누군가의 소중한 일상을 연결하는 박민오 기사를 만났다. 하루에도 수십 번 휠체어 리프트를 내리고 올리며 승객의 안부를 묻는 그. 그의 차 안에는 목적지까지의 거리보다 더 깊고 따뜻한 진심이 실려 있었다. 그의 다정한 동행기, 지금 만나보자.승객들이 장애인 택시가 있어서 너무 좋고 편하다고 많이 이야기하세요.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건 참 행복한 것 같습니다.+16년, 생업에서 천직으로인천장애인콜택시 ‘반디콜’ 박민오 기사. 그가 운전대를 잡은 지도 어느덧 16년이 지났다. 한때 남편과 함께 영업용 택시를 몰며 인천 곳곳을 누비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의 여러 어려움 탓에 운전대를 내려놓아야 했던 그. 그때 마침 운명처럼 마주친 것이 바로 장애인 콜택시 기사 모집 공고였다.“처음엔 먹고살려고 시작한 일이었어요. 운 좋게 합격했을 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죠. 어느새 16년을 하고 있네요.”시간이 흐를수록 이 일은 단순한 ‘밥벌이’ 그 이상이 되었다. 그는 일터에 나가는 하루하루가 즐겁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땀방울로 닦아낸 진심물론 16년의 세월이 늘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몸이 불편한 승객을 모시다 보니 예상치 못한 상황도 잦았다. 이동 중 승객의 갑작스러운 생리현상이 발생한 적도 있고, 보호자가 당황해 상황을
2026-04-14 2026년 4월호 -
특별기획-미리가 본 청라하늘대교 관광시설
“하늘과 바다 사이,내일로 가는 또 하나의 길”글. 임성훈 본지 편집장 사진. 김성재 포토디렉터, 윤상순 시 공보담당관실엣지워크 시연 모습(사진·윤상순)삼위일체다. 하늘과 땅, 바다가 입체적으로 어우러진 관광자원이 인천에서 선을 보인다. 청라하늘대교가 4월 관광시설 개장으로 글로벌 관광의 핵심 거점으로 거듭난다. 세계 최고 높이 해상교량 전망대로 기네스북에 오른 주탑 전망대를 비롯해 엣지워크, 하부전망대와 친수공간, 해상보행데크 등이 주요 관광시설이다. 땅을 통해 들어가 하늘과 바다를 오감으로 만나는 신개념의 관광명소다. 청라하늘대교는 단순한 교통 인프라를 넘어 서해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관광시설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현장점검이한창이던 지난달 25일 청라하늘대교를 둘러보았다.하늘에서 내려다본 주탑 전망대교량 하부 친수공간에서 바라본 청라하늘대교“지금, 여기, 어디, 184m 위”더 스카이 184(The Sky 184)-주탑 전망대“감동과 전율을 한꺼번에”거대한 주탑의 정수리, 막혔던 가슴이 바다만큼 넓어진다.청라하늘대교의 백미는 단연 ‘더 스카이 184’다. ‘세계 최고 높이 해상교량 전망대’로 기네스에 등재된 시설인 만큼, 가장 높은 곳에서 서해의 절경을 감상하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맑은 날에는 서울 롯데월드타워와 남산타워까지 볼 수 있다.주탑 꼭대기 외부에는 국내 최초로 ‘엣지워크’가 설치돼 있다. 엣지워크는 고층에서 외벽을 따라 걷는 체험형 시설. 엣지워크에 발을 내딛는 순간, 하늘과 바다의 경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전율이 온몸을 감싼다.상부 전망대 내부해상 보행데크조명으로 연출한 상부 전망대하부
2026-04-13 2026년 4월호 -
인천에서 인천으로_ 배다리, 기억의 곳간을 열다
아직, 배다리남기지 못한 것과 남아 있는 것배다리 사람들이 오래된 것들을 꺼냈다.마을 전시를 앞두고, 잊고 있던 기억이하나둘 밖으로 나왔다.벽에 걸린 목련화 한 점.시집오던 날, 손수 수놓아 간직해 온 것이었다.날이 닳은 가위. 서랍 깊숙이 잠들어 있었다.열여섯에 처음 손에 쥔 가위였다.장롱 속에 고이 접혀 있던 망토.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어머니가 한 코 한 코 엮어 둔 것이었다.낡은 괘종시계가 ‘댕─’ 하고 울었다.그 소리가 골목을 건너갔다.잊힌 줄 알았던 것들이,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배다리. 봄빛이 낮게 번졌다.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에이이미지 스튜디오취재 영상 보기강철이 두드린 쇠박태순의 손조순자가 엮은 시간최창훈이 피운 꽃쇠로 남기다화평동 작업실에 강철이 서 있다.평생 쇠를 만지며 살아온 사람이다.‘탕─, 탕─’망치가 쇠판을 두드렸다. 한 번, 또 한 번. 붉은 우체통이 모습을 드러냈다. 편지를 받지 않는 우체통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편지를 쓴다. 강철이 만들었다.강철. 아버지가 불 속에서도 버티라고, 더 단단해지라고 지어준 이름이다. 강원도 속초 태생, 아버지도 철을 다루는 사람이었다. 그 손을 보고 자라, 스물여섯에 인천으로 왔다. 주안공단에서 자동차 부품을 만들고, 산업 플랜트를 조립했다. 막 입사한 청년들을 기술자로 길러냈다.쇠가 불 속에서 벌겋게 달아오를 때의 열기, 망치가 내려앉을 때 손바닥을 타고 오는 진동, 담금질할 때 코끝을 찌르는 쇳내를 몸으로 익혔다. 망치질하고 그라인더를 갈고 도면을 그리던 손. 그 손이 지금은 붓을 쥔다.“나는 눈에 보이는 대로만 그리지 않아요. 공장이든 골목이든, 그 안에 무엇이 있는
2026-04-13 2026년 4월호 -
IncheON 사람과 도시
검은 대지에서푸른 하늘까지포토저널리스트김성환, 인천의 시간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매립 전 송도, 1997년 5월.끝이 보이지 않던 갯벌이었다. (인천시립박물관 소장)1977년 11월, 강원도 태백 장성광업소.아버지가 들것에 실려 나왔다.탄가루를 시꺼멓게 뒤집어쓴 채 의식을 잃은탄부들이 병원 마당에 놓여 있었다.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어머니가 달려갔다.울부짖으며 병원 담을 넘었다.아들도 뒤를 따라 뛰었다.그때, 열두 살이었다.그로부터 꼭 스무 해가 지난 1997년.아들은 초경량항공기에 몸을 싣고인천의 하늘 위로 올랐다.아래로 끝없는 갯벌이 펼쳐졌다.그 한가운데, 도시의 미래가 그려져 있었다.아버지는 매일 수 킬로미터 땅속으로 내려갔다.아들은 사진기 하나 들고 하늘로 올라갔다.그 사이의 거리만큼, 인천이 있었다.위. 탄광 입사 후 기념 촬영.땅속으로 내려가기 전, 그들은 웃었다.아래. 나의 아버지, 김필호. 1986년.아들이 사진기로 가장 먼저 담은 얼굴.검은 세상퇴근하고 돌아오는 아버지들의 옷과 얼굴은 온통 검었다.그 사이로 새하얀 치아가 보였다.겨울에 눈이 쌓여도 오래 가지 않았다.처음엔 흰색, 이내 회색, 끝내 검은색으로 바뀌었다.아이들은 미술 시간에 개천을 검게 칠했다.1977년 11월 16일.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에서 화재가 났다.12명이 목숨을 잃었다.218명이 유독가스 중독으로 쓰러졌다.아버지 김필호는 최초 구조대로 갱 안으로 투입됐다.마스크 하나에 의존한 채 연기 속으로 들어갔다.의식을 잃은 채로 실려 나왔다송도 1·2·3공구 매립현장, 2002년 6월.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미래가 현실이 됐다.(인천시립박물관 소장)시흥 오이도
2026-04-10 2026년 4월호 -
시민의 하루
봄날의 인천을좋아하세요?봄과 함께하는 하루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드디어 왔다. 허물을 하나씩 벗고 색색의 빛으로 피어나는 꽃과 나무들, 그리고 푸르른 들판. 인천에서 이 따스한 계절을 즐기기 위해 ‘봄’ 하면 떠오르는 장소들을 찾았다.취재 영상 보기사진. 황지현 포토디렉터+인천으로 떠나는 봄나들이김지인 시민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때마다 마음이 설레는 것처럼, 봄이 오면 괜히 마음이 들뜬다. 아직 완연한 봄은 아니어도, 어딘가에서 작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을 것 같다는 기대 때문이다. 박지인 시민은 시작하는 봄을 만끽하기 위해서 인천수목원을 찾았다.인천수목원에는 작은 꽃들과 나무들이 새록새록 돋아나 있었다. 나뭇가지에는 연둣빛 기운이 감돌고, 겨울에는 아마 조용했을 숲길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수목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꽃은, 활엽수원과 희귀자생원 사이에 있는 ‘복수초’였다. 이른 봄을 알리는 꽃답게, 땅 가까이에서 노란 꽃잎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너무 아담하고 귀여워요. 저도 카메라를 들고 왔다면 많이 찍었을 텐데!” 복수초 주변에는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많았다. 바닥 가까이 쪼그려 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 지나가다 걸음을 멈추고 꽃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박지인 시민도 휴대폰으로 복수초를 담으며 다소 오해할 수 있는(?) 이 꽃의 이름도 살펴봤다. ‘복 복福에 목숨 수壽’. 봄을 알리는 꽃답게 그 이름도 의미가 깊었다.인천수목원의 봄날+ +봄을 알리는 향기올해 처음으로 핀 복수초를 바라보는 김지인 시민이날의 안내자는 ‘자연’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복수초가 있는 곳을 나서자마자, 어디에선
2026-04-10 2026년 4월호 -
시민리포트
하늘에서 즐기는 인천수봉근린공원스카이워크인천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시설이 생겼다. 미추홀구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수봉근린공원에 기다란 스카이워크가 들어선 것이다. 3월 19일부터 개방된 이곳을 시민에게 공개하기에 앞서, 먼저 찾아가 구경하고 직접 체험해 봤다.글. 하경대 시민기자 사진. 황지현 포토디렉터취재 영상 보기+인천 시민들의 핫플이 될 수봉근린공원수봉근린공원은 미추홀구 주민들에게 익숙한 산책로다. 봄이 되면 커다란 나무들이 푸르게 우거지고, 소담한 꽃들이 피어나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걷기 좋다. 곳곳에 벤치도 있어 잠시 앉아 쉬기에도 부담 없다. 나도 절친한 친구가 이 근방에 살아 미추홀구에 놀러 오면 종종 이 공원을 찾곤 했다.이곳의 역사도 깊다. 수봉산 자락에 자리한 이 공원은 6·25 전쟁에서 숨진 장병들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정상에 세워진 현충탑을 1976년 보수하면서 조경과 편의시설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조성됐다. 인천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학도의용군참전비, 자유평화의 탑 등 호국 정신을 기릴 수 있는 시설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이러한 공원에 폭 1.8m, 길이 310m 규모의 스카이워크가 새로 들어섰다. 한쪽으로는 숲을, 다른 한쪽으로는 인천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길이다. 정식 개방에 앞서 먼저 찾아가 둘러봤다.나선형으로 생긴 스카이워크는 걸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줬다.+ +하늘 위로 길게 뻗은 길, 스카이워크를 걷다스카이워크는 지난해 착공해 올해 개방한 시설이다. 처음에는 타워형 전망대로 계획됐지만, 공원의 경관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형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설계가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공원 상부에서 도
2026-04-10 2026년 4월호
- 자료관리담당자
-
- 담당부서 콘텐츠기획관
- 문의처 032-440-8302
- 최종업데이트 2025-08-28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