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지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적혀있다. ‘현재의 나는 나의 과거가 만들어낸 것인가?’ 이 문제는 실제 2015년도 프랑스의 대입 자격시험 ‘바칼로레아’의 인문계열 철학 문제이다. 5개의 보기 중 적절한 것, 또는 적절하지 않은 보기를 고르는 연습만을 반복해온 한국 고등학생이라면 보기가 없는 주관식 시험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올바른 답을 고르는 능력이 아닌 생각하는 능력을 보는 진짜 시험.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에 대해 알아보자.
‘바칼로레아’는 1808년 나폴레옹 1세의 칙령으로 창설된 프랑스의 논술형 대입 자격시험을 말한다. 매년 6월경에 치러지는 이 시험의 목적은 보다 많은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교육의 목적에 알맞게 80%의 합격률을 자랑한다. 또한 불합격을 받은 일부 학생들을 위해 7월 초에 구술시험을 진행해 재평가 받을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교육받을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시험은 프랑스어, 외국어, 역사 및 지리, 수학, 철학을 공통으로 치르고 이 외에는 각자가 희망하는 전공분야에 따라 계열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매년 60만 명이 넘게 응시하는 이 시험은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이면 합격이다. 10점 이상을 받은 사람은 점수에 상관없이 누구나 원하는 일반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된다. 1점을 더 얻기 위해 문제집을 쌓아두고 공부해야 겨우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대한민국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시험이 끝난 직후 프랑스 전 지역은 토론과 논쟁으로 떠들썩하다. 대화의 내용은 주로 올해 바칼로레아의 철학 문제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묻는 것이다. 이처럼 모두가 주목하는 바칼로레아의 ‘철학’시험은 바칼로레아의 점수 비중이 가장 높은 필수과목 중 하나이지만, 네 시간 동안 3가지 주제 중 1가지를 골라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는 것이 전부이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답안지에 적혀 있는 한 가지 보기가 그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출제자의 의도보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이다. 하나의 정답을 향해 달려가기에 급급한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한 권의 문제집이 아니라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일 것이다.
16기 나명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