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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야기

어느 쪽에서나 외치는 그것

작성자
박지헌
작성일
2016-02-24
총선을 앞두고 정당을 불문하며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정의’입니다. 심지어 정의를 당 이름으로 삼은 정당도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내에서의 정의에 대한 열망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왜 모두가 원하는 정의로운 사회가 아직도 구현되지 않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던 도중, 지금의 국내 상황과 비슷한 두 철학자를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 1> 먼저 존 롤스(John Rawls,1921~2002)입니다. 롤스는 정의(正義)를 “정당화 될 수 없는 불평등이 없는 상태”라고 규정지었습니다. 이는 ‘부당한 불평등을 부정하며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불평등을 정당화 할 수 있다’는 요지입니다. 즉, 과정에서 공정성을 확보한다면 불평등을 정당화 할 수 있게 됩니다. 때문에 롤스는 과정의 공정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일종의 ‘장치’를 도입했습니다. 이 장치는 자신이 어떤 지위, 상태인 줄 모르게 만듭니다. 이 장치를 롤스는 ‘무지의 베일(the vail of ignorance)'라고 지칭했습니다. <사진 2> 좀 더 구체적으로 좁히면, 롤스의 정의의 첫 번째 원칙은 ‘자유우선성의 원칙’입니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중시하며, 이 점이 사회주의와 차별화 되는 부분입니다. 두 번째로 ‘차등의 원칙’입니다. 이는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혜택’을 줌으로써 자본주의의 가장 큰 맹점인 ‘부익부 빈익빈’ 문제를 해결 가능하게 합니다. ‘기회 균등의 원칙’이라고도 합니다. 다음으로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 1938~2002)입니다. 존 롤스의 이론을 비판하며 부각된 인물로 ‘자유지상적 유토피아’를 제시했습니다. 개인의 권리보호를 최우선으로 설정한 것인데요. 권리가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는 이상 그 권리는 침해되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 국민의 보호만을 책임지는 ‘야경국가’와 같은 류의 국가관을 제안했습니다. 즉, 국가의 역할을 폭력, 절도, 사기 등의 범죄 행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으로 한정한 것입니다. <사진 3> 노직의 이론이 롤스의 것과 가장 대비되는 점은 ‘선천 능력이나 자질, 재산 등을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배타적 권리로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아무런 노력‧노동없이 행해진 우연 및 상속에 의한 재산 소유를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보았으며, 시장이 아닌 곳에서의 작용을 통한 재산 재분배 자체를 부정합니다. 그렇다면 로직은 왜 국가에 의한 ‘분배적 정의 달성’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일까요? 국가가 주도해서 분배적 정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개개인의 재산과 그 요소들에 대해 알아야합니다. 하지만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이는 불가능해져서 결국 사회 전체를 통제하지 않는 이상 이는 불가능해집니다. <사진4> 이전 세기부터 시작된 이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여전히 상황에 따라서 무게가 실리는 쪽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그 수단에 대한 논쟁으로 인해 진정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잊게되는 상황은 오지 말아야합니다. 16기 박지헌 기자 사진출처 :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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