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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야기

매장문화재법, 그리고 매장되는 국민의 권리

작성자
나명채
작성일
2016-10-13
인류는 ‘역사’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바탕으로 진보해나갔습니다. 머나먼 과거인류의 사회를 가늠하고 그들의 생활상을 들여다보기 위해 우리는 땅속에 묻힌 유물을 발굴합니다. 인류가 남긴 물건이나 흔적이 ‘유물’이라면, ‘문화재’는 그 중에서도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을 일컫습니다. 이러한 문화재들을 연구하며 과거로부터의 소중한 흔적을 퍼즐 맞추듯이 하나하나 조합해놓은 것이 우리가 현재 배우고 기억하는 ‘역사’입니다.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요즘, ‘매장문화재’의 가치는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발굴되기 전까지는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역사적산물이기 때문이죠. 한국매장문화재협회는 매장문화재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전국 1,146건의 문화재 발굴 현장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에 발맞춰 대한민국은 2014년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이하 매장문화재법)’을 제정하여 법적으로 문화재의 발굴과 보존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매장문화재법의 제정을 통해 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문화재를 발굴하고 보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을까요? 사례를 통해 살펴봅시다.

지난해, 천주교 청주교구는 충북 청주의 건물 내 주차장을 확장하고자 청주시에 개발행위허가를 신청했습니다. 이에 청주시는 매장문화재법 제 6조에 근거하여 사전에 지표조사의 실시를 요구했고, 청주교구는 시에 요구에 따라 지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15기의 묘가 매장되어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1100만원의 대체조성비와 시굴조사비 840만원 등으로 약 3500만원이 투입된 데 이어 앞으로 땅값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자, 결국 청주교구는 지표조사만 끝낸 뒤 발굴조사를 포기했습니다. 청주교구는 이미 많은 돈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의 발견으로 인해 개발계획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위와 같은 사례는 공사 계획의 차질은 물론, 경제적 피해까지 입었지만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 어느 곳에도 호소할 수 없습니다. 매장문화재법에 따르면 위와 같은 조치가 합법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해당되는 법률조항입니다.

- 매장문화재법 제6조(매장문화재 지표조사) : 개발사업의 시행자는 개발지에 문화재가 매장ㆍ분포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사전에 매장문화재 지표조사를 하여야 한다.

- 매장문화재법 제8조(지표조사 결과에 따른 협의) : 누구든지 지표조사 결과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에서 개발사업을 하려면 미리 문화재청장과 협의하여야 하고, 문화재청장은 협의 후 매장문화재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개발사업을 하려는 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 이 경우 매장문화재와 그 주변의 경관 보호를 위하여 해당 건설공사의 인가·허가 등을 하지 아니할 수 있다.

이러한 법령은 문화재를 보호하는 순기능만 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매장문화재법에 따르면 문화재 발견 시 유물 발굴과 보존, 관리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비용을 건축주가 부담해야만 합니다. 만약 개발지에 대해 문화재청이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고 사적지로 지정한다면 그에 따른 지원이 이루어지지만, 국가 차원에서도 관리 비용을 핑계로 지정을 꺼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화재 발굴은 전문기관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요구하는 비용도 매우 커 건물주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점은 발굴비용과 공사 중단을 우려해 문화재 훼손이나 발견사실은폐, 해외밀거래 등 역사적 산물의 가치를 해치는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제정된 ‘매장문화재법’은 우리의 문화재를 위협하는 ‘매장문화재훼손법’으로 변질되어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이 훼손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소중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매장문화재의 안전한 발굴을 위한 법령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지원까지 보장하는 제도적·법적 체제가 하루빨리 확충되어야만 합니다.

16기 나명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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