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사회이야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청소년혐오’의 사례

작성자
오혜주
작성일
2017-01-28
최근 선거 연령을 19세에서 18세로 하향하자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많은 청소년들은 이 소식에 매우 기뻐했지만,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관련 기사에는 이런 댓글들이 심심찮게 달렸습니다. ‘청소년이 뭘 안다고 선거권을 주느냐’, ‘청소년이 무슨 투표냐, 공부나 해라’, ‘청소년은 선동에 잘 휩쓸려 선거권을 주면 안 된다’......모두 청소년들을 어른들이 만든 틀 안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여기며 청소년의 참정권을 부정하고 공동체의 의사결정에서 배제하려 하는 내용의 댓글들입니다. 이렇듯 청소년에 대한 비하, 멸시, 억압, 배제는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논란이 되면서 ‘청소년혐오’라는 용어도 등장하게 되었는데요. 우리 사회의 청소년혐오 사례에는 무엇이 있을지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급식충’, ‘중2병’, ‘초글링’...일상 속에서 쓰이는 청소년혐오 표현들

인터넷과 SNS를 즐겨 사용하시는 분이시라면 위 용어들을 아마 모두 들어보셨을 겁니다. ‘급식충’은 급식을 먹는 초, 중, 고등학생을 비하하는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이 표현을 보통 청소년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낼 때 사용하는데, 자신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거나 피해를 입힌 청소년의 부정적 사례를 들며 모든 초, 중, 고등학생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곤 합니다. 어느 집단에나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그 집단 전체를 비난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중2병’은 점차 그 의미가 확대되어 부모님과 선생님께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 진지하거나 감성적인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것,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 공부하기 싫어하는 것, 우울하거나 염세적인 것 등 매우 포괄적인 언행에 쓰이며 사춘기 시기의 청소년들은 ‘중2병 환자’로 불리기도 합니다. 워낙 무분별하게 흔히 쓰이는 표현이라 ‘이게 왜 혐오 표현이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사춘기 또래의 집단을 병리화하고 특정 나이를 그 병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적, 사회적 원인에 따른 행동까지도 그저 나이 때문에 발생한 개인의 문제로만 한정짓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초글링’은 초등학생+저글링(스타크래프트의 용어)의 합성어로 초등학생들이 게임에 접속하거나 PC방에 들어온 상황 등에 쓰입니다. 초등학생도 게임을 즐기며 여가시간을 보낼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하고 PC방에 가는 초등학생들이 ‘초글링’으로 불리는 이유가 뭘까요? 많은 사람들은 초등학생들이 크게 떠들고 남들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점을 이 용어가 만들어진 이유라고 지적하지만, 이 표현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등학생의 등장만으로 그들이 별다른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반감을 드러냅니다. 또한 초등학생보다 성인이 PC방에서 더 크게 떠드는 경우도 많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이 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초등학생이 떠드는 경우보다 불쾌감과 분노를 훨씬 덜 느끼고 그 사람에게 비난이나 제재를 가하는 경우도 훨씬 적습니다.

이 밖에도 인터넷과 SNS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청소년혐오 표현들에는 청소년들은 부모에게 의존하고 기생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전제하에 청소년들의 소비를 부모의 등골을 빨아먹는 배은망덕한 행동이라 비난하는 표현인 ‘등골브레이커’, 짧은 치마를 입거나 화장을 하는 등 어른들이 바라는 ‘소녀다움’에 반하는 옷차림과 치장을 한 여성 청소년을 멸시하는 표현인 ‘룸나무(룸살롱+꿈나무)’ 등이 있습니다.

그 대상과 목적과는 관계없이, 어디까지나 폭력은 폭력에 불과합니다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학교나 가정 등에서 청소년들에게 교훈을 주고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행해지는 폭력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비청소년인 가해자가 피해자인 청소년을 ‘때려야 말을 듣는 존재’ 혹은 ‘자신의 분풀이 상대’로 여겨 체벌을 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청소년을 이성적이지 못하고 미성숙하며 비청소년보다 열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청소년혐오’의 한 예입니다. 체벌은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체벌을 당한 청소년과 이를 목격한 같은 집단의 청소년 모두를 위축시키고, 이는 나이주의에 따른 가해자의 권위를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무서운 10대들’-청소년에 대한 공포

청소년혐오의 또 다른 양상은 청소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입니다. 10대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를 보도하는 기사나 뉴스 보도의 제목에는 ‘무서운 10대들’과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모든 연령대에 분포되어 있고, 유난히 10대에만 그 수가 많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많은 언론들은 그 범죄 자체보다 ‘요즘 10대는 이런 범죄를 저지를 정도로 무섭다’는 내용을 먼저 강조하는 걸까요.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은어와 비속어, 스마트폰과 게임 중독 등과 관련된 뉴스 보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뉴스 보도를 접하는 시청자들은 “하여튼 요즘 애들이란...”하며 혀를 끌끌 차곤 하죠.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며 두발 자유화, 체벌 금지 등을 주장하는 입장에 맞서 학생인권이 보장되면 학교가 붕괴되고 교육이 붕괴될 거라는 극단적인 주장이 등장했던 것도 청소년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무조건 옳을까요?

우리는 청소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에서 비롯된 청소년혐오의 몇몇 사례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청소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무조건 옳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청소년다운’ 긍정적인 면들을 강요하고 이를 만족하는 청소년들과 만족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 또한 청소년혐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흔히 순수하고 명랑하며 순종적이고 낙관적인 특성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하는 청소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한편, 그렇지 않은 청소년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각종 미디어에서 순종적이고 순수하고 티없이 밝은 ‘이상적인 청소년상’을 접한 청소년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틀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청소년이 순종적이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표현하며 사회를 비판하고 자신의 미래를 비관한다고 해서 당연히 그 청소년이 잘못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청소년 또한 자신 그대로를 표현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청소년혐오’ 사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청소년들은 미성숙하고 불완전하며 충동적이고 위험한 존재가 아닙니다. 마냥 순수하고 명랑하며 순종적이고 낙관적이어야만 하는 존재 또한 아닙니다. 청소년과 비청소년은 경계선으로 정해진 나이를 기준으로 나눈 집단들일 뿐, 똑같이 주체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청소년혐오’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청소년혐오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등의 작은 노력부터 시작해 청소년혐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우리 사회의 청소년혐오는 조금씩 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공공누리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청소년정책과
  • 문의처 032-440-2923
  • 최종업데이트 2023-08-23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