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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야기

누구를 위한 삶인가?

작성자
문서정
작성일
2017-02-17
‘죽지 못해 산다’라는 말이 있다. 흔히 힘든 상황이나 처지에 놓여 있을 때 쓰는 표현이다. 죽기 직전의 누군가에겐 화가 날 수도 있는 말이지만 실제로 죽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이들에겐 씁쓸한 한마디이기도 하다. 뇌사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 혹은 죽음에 가까운 사람 중 죽음과 함께 수반되는 고통이 두려운 사람들 등의 많은 사람이 ‘죽지 못해 사는’ 상황의 예이다. 우리도 언젠가 그들 중 한 명이 될 수 있는데 불투명한 미래보다 일찍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안락사’ 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안락사라는 개념은 주로 동물에게 쓰인다. 안락사는 ‘병자를 고통에서 해방해 안락하게 죽게 하는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심한 병에 걸려 죽게 될 운명에 놓인 동물 혹은 인간을 덜 고통스럽게 하도록 약물을 사용해 죽음으로 인도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안락사는 크게 네 경우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순수한 안락사로 죽음의 고통 완화를 목적으로 모르핀(약 이름)을 투여하며 그것이 병자 생명의 단축을 하지 않는 경우이고 두 번째 간접적 안락사는 그와 같은 조치(모르핀 투여)가 불가피하게 병자의 생명을 약간 단축하는 경우입니다. 세 번째로 부작위에 의한 안락사는 적극적인 의료 조치를 마련해도 병자의 생명을 약간밖에 연장하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오로지 그에게 고통을 주기만 하는 경우, 그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이며 마지막인 적극적 안락사 경우 병자의 생명을 적극적으로 끊음으로써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해방한다. 단순히 약물로 죽음을 결정한다는 사실에 부정적인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요즘은 찬성 견해가 많아지고 있다. 가족, 혹은 개인의 선택에 의한 죽음이 덜 고통스럽고 더 행복하다는 입장들이다.


<안락사에 대한 찬반 의견>_그래프 자료


실제로 지인들에게 안락사에 대한 찬반을 조사한 결과 조사한 16명 중 13명은 찬성, 3명만 반대 관점을 보였다. 찬성을 주장한 이들은 대부분 고통을 수반한 삶은 희망 고문일 뿐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가족의 결정에 달릴 경우, 사람이 살 확률이 굉장히 희박하고 경제적으로 부양할 여유가 없을 때라는 조건이 붙었다. 그러나 개인의 결정일 경우 어떤 선택을 하건 자신의 삶이라는 점이 우선시 되었다. 삶은 소중하다. 삶은 소중한 이유는 끝이 있기 때문이다. 그 끝이 죽고 싶을 만큼 아프다면 아름답게라도 끝내는 것이 더 소중해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한다. 또한,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새로운 의견도 있었다. 혹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안락사를 빙자한 살인 사건과 같은 범죄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반면 반대를 주장한 이들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종교적 윤리는 지켜져야 하며, 얼마나 환자가 고통을 느끼고 있던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의사들은 환자들을 끝까지 치료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환자의 고통의 상황을 직접 느끼지 못했을 때의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당사자 처지에서 생각해야 한다.

안락사의 영어는 ‘euthanasia’로 좋은 죽음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 국가가 스스로 좋은 죽음을 선택할 마지막 기회조차 박탈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생명 존중이 안락사 반대의 이유였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선택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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