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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야기

짐승만도 못한 삶

작성자
이여준
작성일
2017-10-25
사라 바트만을 알고 있는가?
사라 바트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거나 혹은 잘 알고 있다면 필자가 풀어나갈 이야기가 밝지 않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라 바트만은 현재로부터 200여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라 바트만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다. 사라 바트만이 그녀의 고향을 떠나던 그 순간부터 사라 바트만의 인생은 인권 침해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사라 바트만은 1789년에 코이산 부족으로 태어났다. 사라바트만이 코이산 부족 안에서 살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혼례날에 백인 정찰대에 납치되어 유럽으로 팔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인 윌리엄 던롭이 사라 바트만을 구입했다. 사라 바트만을 구입한 목적은 돈벌이 때문이었다. 사라 바트만은 이후 인간 전시물이 되어 백인들의 구경거리, 조롱거리가 되었다. 사라 바트만은 당시 백인들과는 외형적인 모습이 매우 달랐다고 한다. 엄청난 크기의 엉덩이와 가슴은 백인들에게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때문에 사라 바트만의 나체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공연을 관람하러 왔고, 그 인기는 엄청났다. 사라 바트만은 관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전통 민요를 부르거나 춤을 춰야 했다. 심지어 3일 내내 서있으면서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물론 사라 바트만에게는 제대로 된 임금도 지불되지 않았으며, 백인들에게 그녀는 인간 흉내를 내는 동물일 뿐이었다. 사라 바트만의 건강은 하루하루 악화되었다. 마침내 1815년 12월 29일 사라 바트만은 숨을 거두었다. 사라 바트만의 주인은 죽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사라 바트만의 시신을 팔아넘겼다. 시신은 파리의 자연사 박물관으로 이동되었다. 그곳에서 시신 중 일부 (뇌, 생식기, 뼈 등) 는 유리병에 담겨 연구의 대상이 되었고, 사라 바트만은 박제 되었다. 박제가 된 후 사라 바트만은 자연사 박물관에 1974년까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전시되었다. 이후 넬슨 만델라 등의 노력으로 사라 바트만의 유해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안치되었다.

고통스러운 생을 살았던 사라 바트만은 사망한 후에도 편안히 쉬지 못했다. 백인들의 우월주의에 밟혀서 200년에 가까운 기간을 고통 속에 있어야만 했다. 사라 바트만이 이런 말도 안되는 생을 산 데에는 별 다른 이유가 없다. 인종이 달라서였다. 사라 바트만은 백인들과 같은 인간이었다. 겉모습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짐승 취급도 못 받으며 살아야 했고, 죽음 뒤에도 평안 따위는 없었다. 전시품이었던 그녀를 애도하기 시작한 때도 그녀가 죽고 무려 20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사라 바트만 외에도 이런 불우한 삶을 살다 하늘의 별이 된 사람들이 여럿 존재했다.
그들도 같은 인간이었음을 기억하자.

출처: 사진 1- 네이버 블로그 ‘영혼의 사라 바트만’
사진 2- 에듀넷 티 클리어
17기 이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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