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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야기

절망을 거름삼아 피어난 꽃, 프리다 칼로

작성자
공나현
작성일
2015-09-04

서울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에서 열리는 프리다 칼로 전시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라는 부제였다.

우선 칼로의 자화상 속 진한 검은색 눈썹은 보는 사람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아 프리다 칼로라는 생소한 화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절망에서 피어났다는 부제는 그녀가 겪어야 했던 아픔이 무엇이었는지 상상하게 한다. 과연 칼로의 극적인 삶이 그녀의 예술 세계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전시회의 그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첫 번째 이야기. “나는 프리다 칼로라고 해”

1907년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태어난 프리다 칼로는 열다섯 살에 멕시코의 명문 교육기관인 에스쿠엘라 국립 예비학교에 입학한다. 이때 칼로는 의학도를 꿈꿨는데, 우연히 학교에서 벽화를 그리던 디에고 리베라를 처음 보고 흠모하게 된다. 1925년에는 첫사랑인 알레한드로와 탄 버스가 충돌사고를 겪으며 왼쪽 다리와 요추 골절, 오른발과 왼쪽 어깨 탈골을 비롯한 전신 치명상을 입는다. 그리고 일 년 뒤에, 병상에 누워있기만 하는 생활의 지루함을 떨치기 위해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소마미술관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자화상이자, 전시회 팸플릿 표지에 있는 작품. 바로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댁 다운 풋풋함 속에 도도함이 보이는 <목걸이를 한 자화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산을 하고 난 뒤의 슬픔이 눈망울에 아른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외할아버지 대부터 운영해오던 사진관 일을 도운 칼로는 마치 사진처럼 세밀하게 자신을 표현했다.


두 번째 자화상은 <땋은 머리의 자화상>으로, 온갖 풍파를 겪기라도 한 듯 이전 그림에서보다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칼로의 몸을 감싼 것은 다름 아닌 포도나무(중남미 문화권에서 ‘영원’을 상징) 잎이고, 머리는 양 갈래로 땋아올려 무한대 기호와 흡사하게 만들었다. 이 두 가지는 ‘한번에 여러 명의 여자들을’ 좋아하는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의 영원한 사랑을 간절히 바라는 칼로의 마음을 대변한다.

​2년 뒤에 그린 <원숭이와 함께 있는 자화상>에는 더 많은 사연이 숨겨져 있다. 미술학교 교수로 임용된 칼로는 자신을 혁명가라고 일컬었지만 정치적 성향과 예술을 철저히 분리해 그림을 그리고, 또 가르쳤다. 자화상 속 원숭이들은 이러한 프리다 칼로의 가르침을 열렬히 지지한 네 명의 애제자로, 스승의 뒤를 이어 멕시코 예술의 거목들로 성장한다. 칼로의 왼쪽에 있는 것은 여왕을 의미하는 극락조 꽃이다. 꼭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나,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에스메랄다 미술학교 교수로 뽑혔어. 나를 따르는 학생들도 꽤 있다고. 좀 대단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듯하다.


두 번째 이야기. “우리가 함께 행복할 수는 없었을까?”


프리다 칼로는 자신이 그토록 존경하던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가 된다. 디에고는 멕시코의 민중 미술에서 빠지지 않는 화가로, 정치색을 띤 벽화 작품을 많이 남겼다. 부부는 왕성한 (사회) 참여 활동을 하는 혁명 지지자였는데, 칼로와는 달리 혁명의 정신에 부합하는 민중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성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기 시작한 성당의 프레스코처럼) 멕시코 혁명정부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벽화를 그린 것이다. 이 둘은 너무나 상반되는 외모 때문에 비둘기와 코끼리라고 일컬어지기도 했으나, 부부는 서로를 애정을 담아 강아지(칼로)와 개구리(디에고)라고 불렀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한 번에 여러 명의 여자를 좋아하는 디에고는 처제와도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칼로와 이별하게 된다. 칼로와 디에고는 흔히 말하는 애증의 관계, 그 이상이었다. 이별 후에도 서로를 계속해서 그리던 부부는 1949년 재결합한다.


<우주, 대지(멕시코), 디에고, 나,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이라는 작품에서, 프리다 칼로에게 아기처럼 안긴 인물은 다름 아닌 남편 디에고이다. 특이하게도, 디에고의 이마에는 커다란 눈이 하나 그려져 있다. 이것은 힌두교 파괴의 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때 파괴는 단순히 무엇을 소멸시킨다는 단적인 의미보다는 악과 부조리를 없애고, 새롭게 창조된다는 양면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즉, 칼로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디에고의 단점들은 싹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그 밖에 좌측의 큰 손목 위에 올라앉은 동물은 프리다 칼로의 애견 중 한 마리이다. 칼로는 평생 동안 동물을 많이 키웠는데,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사진사였던 아버지는 간질이 있으셨는데, 그래선지 길거리에서 쓰러져 종종 발작을 일으켰다고 한다. 어린 프리다 칼로는 길에서 쓰러진 아버지를 도우는 것은 물론이요, 사진관에서 쓰는 비싼 도구들을 주섬주섬 챙겨야만 했다. 칼로가 불운한 삶 속의 절망을 낙천적인 회화로 승화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작품 속에서, 프리다 칼로와 대지의 여신의 가슴은 크게 상반된다. 흰 젖이 나오는 여신은 대지의 풍요로움을 대변하고 있는 듯한 반면, 칼로에게서는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것이 꼭 살면서 그녀가 입은 수많은 상처를 상징하는 것 같다. <우주, 대지(멕시코), 디에고, 나,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은 말년의 작품으로, 칼로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던듯싶다. 40대에 짧은 생을 마감한 그녀는 일기장 끄트머리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정물화 <드러난 삶의 풍경 앞에서 겁에 질린 신부>는 다양한 상징물을 통해 프리다 칼로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바나나는 남성, 파파야는 여성, 그리고 수박은 음양의 조화를 상징한다. 디에고와 칼로 부부의 관계에 대한 그림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정물화는 또한, 이솝우화를 들려주고 있다. 올빼미(디에고)가 베짱이(칼로)를 유혹하면, 베짱이는 자신이 잡아먹힐 것을 알면서도 올빼미의 꾐에 넘어가고 만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을 과일 뒤편에서 빼꼼 고개만 내밀고 지켜보는 신부 인형에는 (재혼한 뒤) 프리다 칼로의 불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세 번째 이야기. “나는 작품 속에 살아있다.”

​서른두 차례의 수술과 디에고에게 받은 온갖 상처를 작품 속에 그려낸 프리다 칼로. 중남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세계 주요 미술관에 진출하며, 그녀의 열정이 담긴 대담한 화풍이 해외에도 널리 알려진다. 초현실주의의 주창자인 앙드레 브르통은 프리다 칼로의 예술 세계를 일컬어, 폭탄을 둘러싼 리본이라고 평했다. 프리다 칼로는 칸딘스키와 피카소 같은 굵직한 화가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을 뿐 아니라 팝스타 마돈나(그리고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의 롤모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또 특유의 독특하고 화려한 칼로의 스타일은 코코 샤넬과 어깨를 나란히 한 스키아파렐리나 2012년 코르셋을 닮은 코카콜라 디자인을 선보였던 장 폴 고티에 등의 디자이너들에게 뮤즈 같은 존재가 되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다고 하지만, 프리다 칼로만큼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야 했던 꽃도 드물다. (그토록 함께 하기를 원했던 남편 몫의 시련까지 짊어지고 살았나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러나 칼로는 포기하지 않았다. 비바람이 불어올수록 더욱더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꽃씨를 꼭꼭 싸 두어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다. 회화 작품, 일기장, 편지, 사진……. 프리다 칼로가 남긴 삶의 기록들 대부분에는 절망과 희망이라는 두 가지 이야기가 공존한다. 소마 미술관의 전시회 작품들을 봐도 알 수 있듯, 프리다 칼로는 시련이 닥쳐올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희망으로 그림을 그렸다. 삶의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그녀의 비결은 낙천적인 태도였다.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을 때, 프리다 칼로는 “발? 네가 왜 필요해? 나에게는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날개가 있는데.”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칼로가 남긴 말과 그림을 떠올린다면 다시 부딪혀 볼 용기와 가능성이 보일 것 같다. 프리다 칼로의 회화 작품이 유수의 예술가들은 물론, 멕시코라면 타코와 “올라!” 밖에 모르던 필자의 마음에도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화려한 그림 속에 숨겨진 희망의 이야기가 있어서가 아닐까?​


프리다 칼로 전시회 홈페이지: http://www.fridakahlo.co.kr/2015/index_new.html

15기 공나현 기자

사진 출처: 프리다 칼로 전시회 홈페이지

비웅시인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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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사진과 옷은 직접 촬영)


☞기사 작성에 큰 도움을 주신 소마 미술관 김진숙 도슨트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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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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