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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야기

내가 일진이라고?

작성자
문서정
작성일
2017-05-04

학교에서 조금 튀는 아이들, 나와는 노는 물이 다른 아이들, 이들을 소위 ‘일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일진의 기준이 무엇일까, 화장? 성적? 성격? 정답은 모두 아닐 수도, 맞을 수도 있다. 과거엔 싸움을 잘하거나 잘 노는 것으로 유명한 학생을 일진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여러 한국 문학에선 일진을 악으로 선정해놓고 소설을 전개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경계가 모호하다. 어른들이 흔히 ‘좋지 않은 물’이라고 표현하는 아이들이 단순히 활발한 아이들일 수도,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진 아이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진의 연령대가 갈수록 낮아져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일진의 개념이 존재한다고 한다. 과연 그 기준은 무엇일까?


“학교 내에서 일진으로 부상하는 경로는 분명치 않으나 새로 입학한 신입생 중 싸움이나 유흥, 예쁜 얼굴로 유명한 아이들이 있으면 주변에서 일진으로 불러주고, 일정한 정도의 호응을 얻으면 일진회로부터 가입 권유를 받아 회원이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선 일진의 사전적 정의는 교내 폭력 서클을 상징하는 말인 일진회의 멤버라고 한다. 이때의 일진회는 ‘한 일(一)’에 ‘진실 진(陣)’, ‘모일 회(會)’로 쉽게 풀이하면 ‘진을 치고 모여 있는 한 모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는 모여 있다고 모두 일진회는 아니며 폭력을 쓰지 않아도 종종 일진이라고 한다. 과거와 달리 폭력이 일진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대중문화사전에 따르면 일진은 엄격한 선후배 상하 구조를 바탕으로 신입회원을 혹독하게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것은 왕따와 비슷한 개념이다. 하지만 이도 확실한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왕따는 어느 그룹에서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에는 얼짱(얼굴이 예쁜 사람), 몸짱(몸이 좋은 사람) 신드롬을 반영하여 학교나 학년 내에서 유명할 정도로 잘생기거나 예쁜 학생들을 일진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일진이라는 용어가 부정적으로 쓰이는 만큼 예쁜 학생들에게도 일진이라 하면 기분 나빠한다. 그러므로 외모 또한 일진의 기준이 되기가 어렵다.


청소년들의 탈선행위


학교에 저마다 일진이 존재할 것이다. 일진에 대한 생각을 보편화하기 위해 주변에 일진의 기준을 물어보았다. 우선 친구 1의 경우 일진이란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양아치, 노는 애들 등의 말로 대신 표현한다고 한다. 또 모든 반마다 7~8 명의 노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며 화장을 하고 언행이 바르지 못한 친구들을 일진이라 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친구 2는 일진을 종종 사용한다고 했다. 진한 화장과 함께 담배를 피우고 학교를 나오지 않는 불량한 학생을 일진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덧붙여 일진과 어울리기가 겁이 나고 무섭다고 하였다. 어른 1 시각에서의 일진은 학생의 신분으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 예를 들어 담배를 태우거나 왕따를 시키는 등의 행동을 하는 아이를 일진이라고 했다. 대부분 학생으로서 옳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기에 일진이라 불리고 있었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기준만 없을 뿐, 모호하게나마 각자의 기준을 세워놓고 있었던 것이다.



일진과 모범생에 대한 질문 반응 차이


그러나 일진이란 단어는 분명히 좋지 않은 단어이다. 다른 이들에게 일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정작 자신이 일진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떨까? 간단한 실험을 해보았다. ‘너 일진이야?’와 ‘너 모범생이야?’라고 물어본 후 각각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공통적으로 일진이라는 단어에 반감을 사며 듣기 싫어했다. 어떤 기준을 삼건 자신이 일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향해 일진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도 일진이 되어 있을 수 있다.

일진의 정의와 기준은 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 기준이 다르고, 아직까지 일진이란 단어는 부정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과거보단 현재의 일진의 개념이 더 널리 쓰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래에도 일진이란 단어가 더 많은 아이들에게 쓰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고, 누구에게나 이유 있는 행동을 함부로 일진이라 정의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내용 출처: 네이버 대중문화사전
사진 출처: 새전북신문, 최홍욱
17기 문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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