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아이들(The Water Babies)』만큼 시적이고, 사회 고발적인 소설이 또 있을까? 저자 찰스 킹즐리는 이 소설을 발표하며 공상 소설의 선구자라는 칭호와 당대 사회의 부조리함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이 이 소설에 감동하여 자신의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읽어 주었다는 일화는 이 소설이 당대 영국 사회에 끼쳤던 크나큰 영향력과 인기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단순히 어린이들이 읽을 법한 제목의 소설. 이 소설이 대체 어떤 책이기에 영국에서 사랑받는 동화로 자리 잡게 된 것일까?
『물의 아이들』은 주인공 톰이 연못에 빠져 물의 아이가 된 후 벌어지는 일을 담은 책이다. 톰은 온몸에 지워지지 않는 검댕을 뒤집어쓰고 주인 그라임스 씨의 학대를 받으며 위험한 굴뚝 청소 일을 한다. 물의 아이가 되기 전 톰은 당시 흔히 볼 수 있었던 아동 노동자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굴뚝 청소를 가게 된 어느 부잣집에서 도둑질했다는 오해를 받게 되고,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는 과정에서 연못으로 들어가 물의 아이가 된다. 소설의 줄거리는 당대엔 흔하지 않았던 공상 소설이었고, 물속에 사는 아이들이 물속 요정과 물고기들과 교감하며 살아간다는 내용은 가히 서정적이다. 문학으로서의 『물의 아이들』은, 『물의 아이들』만이 구현해낼 수 있는 신비로운 배경 설정과 환상적인 줄거리로 성공했다.
그러나 이런 문학적 가치만으로 『물의 아이들』이 19세기의 영국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다. 당시의 영국을 사로잡은 건 『물의 아이들』이 당대 영국 사회와 사람들을 훌륭하게 그려내었기 때문이다. 톰은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했던 어린이들을 나타낸다. 그라임스 씨는 그런 어린이들을 학대하는 어른들을 상징한다. 그라임스 씨 이외에도 톰에게 잘난 척을 한 수달이나, 잔인한 갈매기 등은 사회의 악한 어른들을 상징한다. 작가 킹즐리는 이들처럼 악한 본성을 지닌 등장인물과 톰, 요정, 엘리―톰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등의 선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을 묘사했다. 이를 통해 그는 약자를 괴롭히고 이익을 추구하는 어른들의 위선과 탐욕을 비판하기도 하고, 톰처럼 위험한 일터로 내몰리는 어린이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알리기도 했다. 이 소설을 계기로 킹즐리는 영국 내 아동 노동자들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어린이들을 굴뚝 청소부로 고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입법되며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 이바지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라는 말이 있다. 18세기 산업 혁명이 시작된 이후 누구도 고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아동 인권 문제를 알리기 위해 찰스 킹즐리가 선택한 방법은 펜을 드는 것이었다. 어쩌면 『물의 아이들』이 아동 인권 문제를 영향력 있게 제고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소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문학은 사람들의 삶을 반영한다. 문학이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나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킹즐리는 이러한 문학의 특징을 이용해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톰의 모습을 그렸고, 그 사회에서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 마침내 위험 속에서 굴뚝을 청소할 수많은 톰을 구해냈다. 그는 단순히 펜을 들고 손목을 움직였으나 그가 쓴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변화는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된다. 가령 그것이 글이 아니라 할지라도 진솔함이 담긴 나의 작은 행동이 큰 결과를 가져오리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오늘 기사에서 다뤘던 『물의 아이들』이 일으킨 사회적 변화를 다시 돌아보면서, 큰 변화를 위한 첫 발걸음은 글과 같은 나의 작은 움직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17기 전윤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