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칠드런. 영어로 되어 있는 제목 탓에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밀레니얼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띄고 있는 것일까 싶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도 이 제목이 왜 붙었는지 그 의미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이 책에 대해 가장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이 책은 현재의 우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스토리가 어딜 봐서 현재지? 이 책 앞부분에서부터 인류는 진보를 이룩했다고 나오는데? 미래의 얘기를 다루고 있는 것 아닐까?’하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배경 자체는 미래이다. 그러나 작가가 풍자하고 싶은 대상은 우리인 것이다. 이 책은,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문제에서 야기된 결과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이 점점 많아지자 나라는 자식을 못 낳게 했고, 자식을 낳아 기르고 싶으면 엄청난 세금을 내야한다는 것. 자식세를 내지 않고 몰래 기르다 적발되면, 그 부모는 감옥으로 끌려가고 그 자식은 수용소와 같은 학교로 끌려간다. 이 책의 주인공인 문도새벽은 부모님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학교로 가게 된다. 그 학교라는 곳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부모가 몰래 기르다 적발되어 왔거나 처음부터 그곳에 살았던 아이들이었다. 문도새벽처럼 오게 된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였던 것이다. 자식세를 내면서 자식을 기를만큼 경제적 여유를 갖추고 있던 부모님이 계셨기에 이 ‘학교’라는 것을 경험할 길이 없었던 문도새벽은 첫날부터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선생님이 강요하는 부당한 요구, 성적으로 차별하는 학교의 모습 등... 이 책은 ‘문도새벽’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역겨움을 느낄 만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차별과 편견의 종합체를 보여주는 듯하다. 같은 입장에 처해 있음에도 편을 갈라 싸우는 아이들의 모습. 인간 본성의 최악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 둘씩 부당한 사회 시스템에 맞서 싸우기 시작하는 모습에서, 열린 결말로 끝나 끝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들의 미래는 희망적일 것이라는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에서 말이다.
우리 사회가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학교’라는 곳과 무엇이 다른가? 차별, 편견 이 세상에 퍼져있는 것들을 이 책은 학교라는 좁은 장소에 모아놓았을 뿐이다. 학교의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 학교를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맞는 말이나 넓게 생각하자. 작가는 현재를 살아가며 곧 닥쳐올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그걸 토대로 현재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 이 두 가지는 광활한 시간의 차이를 두고 있다. 그러나 또한 광활한 시간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가 바뀌면 미래가 바뀌어간다.
명심하자. 현재가 바뀌면, 미래가 바뀌어간다. 내가 행동하면, 달라진다.
17기 주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