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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야기

팝아트에 관하여 1

작성자
주가은
작성일
2018-03-17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술 작품을 접하기 위해서는 전시회장이나 미술관에 가야한다고 말한다. 또 그들이 작품 감상이 취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며 은연중에 그러한 사람들을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작품들을 접하고 있다. 팝아트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팝아트는 popular art를 줄여서 만들어진 단어로, 대중 예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팝아트란 대중들이 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대중에게 친숙한 만화나 광고, 상품, 유명인 등을 인용하여 표현한 예술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접하는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팝아트로 인해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바라보는 것의 범위가 크게 바뀌었을 만큼 팝아트는 미술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팝아트의 탄생, 발전 배경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팝아트가 미국에서 발전하고 유명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팝아트의 시초를 미국이라고 알고 있지만, 팝아트의 시초는 미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찾아봐야 한다. 1950년대부터 팝아트적인 특징이 보이기 시작하는 작품이 영국에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인 1949년에 베이컨이 작품에 사진을 활용한 것이 팝아트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1956년 해밀턴의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작품이 영국 최초의 팝아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팝아트라는 용어 자체는 1954년 즈음 평론가 앨러웨이가 처음 사용했으며 영국의 젊은 작가들 간의 토의에서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영국의 팝아트는 사회비판적이라는 점에서 ‘무의미함’을 뜻하는 다다이즘과 비슷한 성격을 지니며 발전해왔다. 하지만 팝아트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된 곳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영국이 아닌 미국이었다. 그 배경에는 미국이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여 엄청난 산업 발전, 매스 미디어의 발달, 상품의 대량생산과 대량 소비 문화의 팽창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또 기존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과 추상표현주의의 한계 또한 이에 한 몫 하였다.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미국에서의 팝아트는 처음에 네오다다(Neo dada)로 불린다. 영국의 팝아트가 다다이즘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팝아트도 처음에는 다다이즘과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전의 다다 운동은 파괴와 반항적인 성격이 주된 특징이었다면, 미국의 네오 다다는 반 예술적 활동을 창조 행위로 이어 그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였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인쇄물, 폐물 등을 모아 회화와 조각을 합친 라우센버그의 컴바인 페인팅과 과녁과 숫자와 지도가 돋보이는 존스의 회화가 있다. 라우센버그와 존스는 추상표현주의의 특징을 작품을 만드는 데 활용했으나 추상표현주의가 추구하는 숭고함, 상징성을 배제하고 일상성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했다. 따라서 네오다다는 기존 세대에서 우세했던 예술 사조인 추상 표현주의와 새롭게 등장한 팝아트 중간 즈음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의 팝아트는 네오다다를 추구한 작가를 선구자로 두고 1960년대에 뉴욕을 중심으로 하여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팝아트 작품 대다수가 이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팝아트 작품은 전 세계 미술계에 큰 영향을 주었고 세계의 작가들이 이에 영향을 많이 받아 팝아트적인 요소가 보이는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에도 팝아트는 그래픽 디자인 등의 분야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18기 주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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