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에게는 앤디 워홀이 가장 익숙하겠지만 앤디 워홀만큼 유명하고 뛰어난 팝 아티스트가 또 있다. 바로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상업미술가, 쇼윈도 디스플레이, 가르치는 일 등의 여러 가지 상업 예술 관련 아르바이트들을 했다. 그가 작품 활동을 처음 시작할 당시 1950년대 말에는 그 당시 유행하던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1961년에 작업 방향을 수정해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만화 캐릭터와 상업적인 이미지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히 1962년 뉴욕에서 열린 그의 첫 개인전은 대중매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고 크나큰 성공을 거두었다. 리히텐슈타인은 강렬하고 단순 명료한 원색 혹은 흑백으로 대중만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를 그렸다. 두꺼운 검은 윤곽선, 역동적인 구성은 정말 연재 만화와 같은 데서 쉽게 볼 법한 표현 기법이다. 어찌 보면 원색과 평면적인 구성 때문에 유치하다고도 여겨질 수 있을 법한 그의 작품은 단순해 보이는 그림 속에 세밀한 구성을 담아 놓았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광고 이미지나 만화의 일부분을 확대해 그린 것도 있는데 신문 혹은 잡지 같은 인쇄물에서 보이는 망점 또한 표현을 해 놓았다는 점에서 그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공놀이 소녀’, 꽝!‘, ’물에 빠진 소녀‘, ’흰 붓자국 ‘, ’행복한 눈물‘ 등이 있다. 대량소비, 대량생산이 주를 이루던 시기에 리히텐슈타인은 가장 미국적인 소재를 가장 미국적인 매스미디어 방법으로 그려내어 미국을 대표하는 팝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앤디 워홀과는 둘 다 팝 아티스트로서 전통적인 고급스러운 순수 예술에 도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반복적인 표현 기법을 사용한 앤디 워홀과는 달리 리히텐슈타인은 복잡한 구성과 세심하고 정확한 드로잉과 채색으로 그려진 단순한 그림들을 통해 삶에 대한 풍자적인 통찰을 수행한다.
기존에 존재하던 예술들, 예를 들어 추상표현주의와 같은 경우에는 대중들이 접하기엔 너무 어려운 예술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감정과 같은 추상적인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니 해석하기에 따라 그림의 의미도 달라지고 일반 대중들은 전문가의 해설을 들어야만 비로소 그림을 이해하며 볼 수 있기에 그 당시에 취미로 그림을 감상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팝아트를 통해 멀게만 느껴졌던 예술은 현실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이는 대중들과 소통하며 예술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팝아트는 텔레비전과 같은 매스미디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품 광고, 쇼윈도, 코카콜라, 만화주인공 등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것들을 순수 예술로 끌어들임으로써 순수예술이 추구하던 고상함을 비판하며 순수예술의 견고한 경계를 무너뜨렸다. 즉 작품들을 순수예술 혹은 대중예술의 영역에 분류하여 넣으려고 했던 기존 이분법적, 위계적 구조를 없애고, 산업사회의 현실을 미술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팝아트가 지니는 의의가 돋보인다. 이런 팝아트의 특성 덕분에 근, 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예술과 예술 작품의 정의가 뜻하는 것이 꽤 넓어졌다. ‘미’에 대한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게 된 이유로는 많은 것이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던 팝아트의 의의를 되짚어보면 팝아트가 그 중에서도 꽤나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계속 지니고 있던 기존의 생각의 경계를 한 층 더 넓히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충격 아닌 충격을 안겨 주어서 팝아트는 1950년대에 등장한 이래로 미술계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팝아트도 또한 장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팝아트는 팝아트가 생겨나는 계기가 된 다다이즘에서 기원한 반 예술적 정신을 미학의 영역에 포함시켰다. 예술이기를 거부한 것을 예술로 다시 끌어들인 것이다. 따라서 상품미학에 대한 진정한 비판적 대안의 제시했다기보다는 20세기부터 거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대량소비문화에 굴복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한편, 로버트 휴즈는 그의 저서 ‘새로움의 충격‘에서 워홀을 예로 들면서 팝아트가 아방가르드 미술의 이상을 붕괴시켰다고 비난했으나 존 A. 워커는 ’대중매체시대의 예술‘에서 워홀의 비즈니스 아트라는 철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팝아트를 예술이 문화적, 정치적 투쟁에 기여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제시했다. 이처럼 팝아트에 대한 평가는 비평가에 따라, 보는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 그 이유는 팝아트가 대도시와 대중문화가 새롭게 등장하며 부상하는 시기에,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전환될 때에 등장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팝아트가 후에 지나친 상업주의 미술로 기울기는 하였으나, 현실과 예술을 동시에 다루고자 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손상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18기 주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