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가 시간을 즐겁게 해주는 운동, 배드민턴. 누구나 금방 배울 수 있고 라켓과 셔틀콕 그리고 함께 해주는 사람만 있다면 쉽게 즐길 수 있는 이 운동. 이 운동의 시초는 과연 언제일까? 먼저 아래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을 그린 샤르댕은 1700년대 사람이므로 18세기에도 배드민턴과 유사한 스포츠가 행해졌다는 것을 이 그림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또 알 수 있는 것은, 이 소녀의 외형적인 부분을 고려하면 이 소녀는 평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민이 라켓과 셔틀콕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당시 유럽에서 배드민턴과 비슷한 스포츠가 꽤 유행했다는 것이다. 물론 진정한 배드민턴의 시초는 이 때(18세기)가 아니다. 더욱 거슬러 올라간, 12세기 즈음이다. 영국 왕실의 자료에 따르면 이미 12세기에 배드민턴과 비슷한 게임에 대한 자료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공을 막대기로 치는 걸 모두 배드민턴의 시초로 볼 수는 없기에 오늘날과 같은 배드민턴의 시초를 알아보고자 한다.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된 배드민턴은 1820년경(19세기) 인도의 봄베이주에 있는 푸나 마을에서 생겨났다. 그 당시 푸나 마을에서는 푸나(poona)게임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그 게임은 코르크로 만든 볼에 새의 깃털을 꽂아 그것을 손바닥이나 빨래 방망이로 쳐서 넘기는 게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의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배 하에 있어 인도 내에는 다수의 영국 군인들이 있었다. 그 와중에 1873년 인도에 주둔하던 영국의 육군사관들이 이 푸나 게임에 흥미를 느끼고 본국으로 돌아가 이 게임을 재현하게 되는데, 이 재현이 근대스포츠로서 배드민턴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푸나에 깊은 흥미를 가지게 된 영국의 뷰포트 공작은 게임 방법을 정리하여 영국 전역에 보급했다. 이 스포츠를 보급할 때, 그는 푸나라고 보급하지 않고 자신의 저택 이름인 ‘배드민턴’으로 이 스포츠의 이름을 정해서 보급하였다. 특히 뷰포트 공작은 자신의 ‘배드민턴’에서 정기적으로 배드민턴 게임을 벌였는데, 그러한 문화가 굳어지며 이 배드민턴은 귀족의 게임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 스포츠가 보급되는 시점에는 배드민턴이 앞서 말했듯이 귀족들이 하는 게임이었기에 엄격한 매너를 갖추어야 했다. 그래서 대부분 배드민턴을 즐기는 사람들은 높은 컬러가 있는 셔츠에 웃옷을 단정히 입고, 실크 해트(예장용 모자)를 쓴 복장으로 게임을 했다고 한다. 물론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배드민턴은 귀족의 운동이 아닌 오락거리의 스포츠로 자리 잡게 된다.
18기 주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