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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야기

조선시대 미인

작성자
주가은
작성일
2018-06-13

예쁘다, 잘생겼다는 소리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필자는 우리 모두의 마음 속 한 켠에는 ‘미’에 대한 추구가 깃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부터 전해진 대중매체,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서양식 미의 기준이 그 나라의 미의 기준으로 정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서양인들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특징들이 우리나라에서 미의 기준이 되고 있다. 짙은 쌍꺼풀, 높은 코, 큰 눈, 통통한 입술, 새하얀 피부 등이 그 예시이다. 사실상 이러한 특징들은 동양인들에게는 나타나기 어려운 것이지만, ‘왜 난 코가 높지 않고 쌍꺼풀도 없지?’라고 생각하며 미인이라고 소문난 사람들의 사진과 자신을 비교하고 있는 당신. 혹시 이 기사의 제목인 조선 시대 미인이라는 단어를 보고, 서양식 미의 기준이 아니라 조선시대 미의 기준이 지금까지 지속되었다면 자신이 천하를 호령하는 절세가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다음 제시되는 사진은 지역별 미인의 기준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하더라도, 도마다 미인의 기준이 약간씩 달라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마다 조금씩 다른 미인의 기준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미인의 기준으로 항상 꼽히는 것이 있다. 다음 제시되는 것이 바로 그 예시들이다.

3백이라 하여 살결, 치아, 손은 희어야 하고,
3흑이라 하여 눈동자, 눈썹, 속눈썹은 검어야 하고,
3홍이라 하여, 입술, 볼, 손톱은 붉어야 하고,
3장이라 하여, 목, 머리, 팔다리는 길어야 하고,
3단이라 하여, 치아, 귀, 발길이는 짧아야 하고,
3광이라 하여, 가슴, 이마, 미간은 넓어야 하고,
3협이라 하여, 입, 허리, 발목은 가늘어야 하고,
3태라 하여, 손가락, 목, 콧날은 가늘어야 하고,
3소라 하여, 유두, 코, 머리는 작아야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조선 시대 미인이라고 하면서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지 않은가? 보통 우리는 조선시대 미인하면, 조금 통통하고 펑퍼짐한 몸매의 여성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위의 기준 및 지역별 미인의 기준을 샅샅이 찾아보아도 통통한 여성을 더 아름답다고 여긴다는 말은 없다. 오히려 조선시대 미의 기준도 현대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마른형의 여성을 좀 더 선호하며 흰 피부에 빨간 입술 등의 기준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앞서 제시된 미인의 기준은 외형적인 것만을 가리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시 조선시대에는 이성으로서의 여성상과 부인으로서의 여성상이 달랐다. 그 당시에는 아들을 낳아 집안으로 하여금 대를 잇게 하는 것이 여성의 주요 역할로 여겨졌었다. 따라서 부인으로서의 여성상은 우리가 조선시대 미인하면 흔히 떠올리는 여성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조금 통통하고 배가 풍만해 아이를 순풍순풍 잘 낳을 수 있는 여성. 이러한 여성들이 부인으로서는 이상적인 여성들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당시 남성들은 외형적인 것만을 고려했을 때는 앞서 얘기한 기준들을 쭉 읊으며 미인(성적으로 매력이 있는 여성)을 구분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가도 당신은 미인에 속할 것이라 자신할 수 있는가? 예나 지금이나 미의 기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기에 조선시대에 가도 바뀌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외형적인 것이 뭐가 중요한가.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고 보통 사람들은 관계를 지속하는데 있어서 외형적인 요소보다는 내면적인 요소에 더욱 집중한다. 자신의 얼굴, 몸매 등에 집착하기보다는 내면적인 부분에 좀 더 집중해보는 것이 어떨까?

18기 주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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