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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야기

중국 역사상 최고의 악녀, 서태후

작성자
주가은
작성일
2018-10-27

유교 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중국과 우리나라. 덕분에 옛날에는 여자는 황제로 군림하는 것은커녕 쉽게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그 먼 옛날, 그 경직된 중국 사회에서 여자가 권력을 잡은 일이 두 번 있었으니 바로 당나라 고종의 황후였다가 직접 황제가 된 측천무후와 청나라 말기의 서태후가 그 주인공들이다.

당시의 중국 사람들은 여성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탐탁지 않게 봐서 그 둘을 악녀라고 불렀는데, 측천무후는 악녀라고 불리기에는 그녀의 업적이 뛰어나다. 그녀가 다스리는 15년 동안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누렸는데 말이다. 측천무후는 그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황제로서 나라를 잘 다스렸음에도 불구하고 악녀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서태후는 다르다. 그녀는 악녀라는 칭호로 불려도 마땅한 사람이다.

일단 서태후는 그녀의 본명이 아니다. 그녀는 청나라 9대 황제 함풍제의 황후로, 자금성에는 황후가 두 명이 있었는데 동쪽 처소에 기거하는 황후를 동태후, 서쪽 처소에 기거하는 황후를 서태후라고 했기에 그녀가 서태후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즉, 서태후는 함풍제의 서태후라는 뜻이 된다.

그녀는 야망이 대단한 여자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내고 17살에 자금성 궁녀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권력에 대한 욕망을 보였다. 그녀는 출중한 외모와 말재주로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궁녀 시절 서태후는 궁궐에서 고양이를 잃어 슬피 우는 연기를 펼쳐서, 황제인 함풍제의 눈에 들게 되었고, 후궁으로 책봉되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그녀는 처음에는 후궁이었으나 유일하게 아들을 낳아 황후가 되었는데 아들이 태어난 지 몇 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함풍제는 이른 나이에 죽게 된다. 이 때문에 그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서태후의 아들인 동치제가 6살의 나이에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어린 아들이 즉위하며 섭정을 하게 된 서태후는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기 시작한다.

권력을 잡은 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권력을 휘두른 방법을 비난하는 것이다. 그녀의 재위했던 시절은 19c 말이었다는 것을 근거로 당시 시대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권력을 제대로 사용해 청나라를 강성하게끔 만들었다면 청나라는 그렇게 서양 제국들에 의해 몰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일단 사치가 매우 심했다고 한다. 황실 역사상 최고라고 하니, 그녀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 번 살펴보자. 그녀의 밥상에는 주식으로 30가지, 반찬으로 128가지의 산해진미가 올라왔는데 이 한 끼 상차림에 은 100만 냥이 들었다. 은 100만 냥은 당시 중국 농민들의 약 1년 치 식량이었다(지금 돈으로 800만 원). 그녀 혼자 다 먹지도 못한 음식을 차리게 된 이유는 그저 그녀의 엄청난 식탐 때문이었다.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는지 금박이 입혀진 비단옷을 매우 좋아했고, 옷은 대략 2만여 벌 정도 있어 하루에 몇 번씩 옷을 갈아입었다고 한다. 보석도 매우 좋아해 머리장식과 그녀의 긴 손톱에 보석으로 장식을 했다고 한다. 사치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은 그녀의 별장인 이화원인데, 서태후는 청일전쟁 당시 함대를 만드는 돈을 빼돌려 자신의 별장을 꾸몄다고 한다.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군비를 빼돌린 것도 기가 막힌데 그것을 자신의 처소 꾸미기에 썼다니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사치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렇게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데도 그녀 곁에는 충언을 해줄 신하 한 명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가 권력을 잡으며 자신과 반대되는 세력을 모두 제거해버렸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한 짓부터 볼까. 아들이 자라 성인이 되어 권력을 물려줄 때가 되었음에도 그녀는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아들과 권력 다툼을 벌인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은 동태후와 오히려 더 친해지고, 동태후는 함풍제의 유언(서태후가 권력 농단을 하려고 하면 그녀를 죽이라) 문서로 그녀가 함부로 행동을 못 하게끔 막아두고 있었다. 제1 황후인 자신과 후궁 출신 황후 서태후 간의 위계질서도 확실히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서태후는 잔꾀로 동태후의 마음을 사로잡아 동태후 스스로 함풍제의 유서를 불사르게 만든다. 자신을 옥죄던 것이 사라진 서태후는 온갖 횡포를 부리게 되는데, 일단 그녀를 믿게 된 동태후를 전병을 보내 죽게 만들고, 아들 동치제가 주색잡기에 빠지게끔 방치한다. 결국 타락의 길로 가버린 아들 동치제는 모후와의 갈등을 주색잡기에 풀었고 그는 20세에 매독으로 죽고 만다. 아들이 죽자 서태후는 아들의 아내에게 거짓 죄명을 씌워 죽인다. 이후 그녀는 4살짜리 조카 광서제를 황제로 앉혀놓고 마음껏 권력을 주무른다.

권력에 눈이 멀었던 것이다. 영원한 권세를 바라던 그녀는 죽기 전에 자신의 깨달았는지 몰라도, 유언으로 ‘다시는 여자가 정치하지 못하게 하라’를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를 그렇게 한 것은 그녀가 '여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여자'로서가 아닌, '황후'로서의 그녀의 삶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며 교훈 몇 가지를 얻어 가길 바란다.

18기 주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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