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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음반, 패션

차별에 반대하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작성자
도은영
작성일
2015-07-26
여러분은 차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우린 손쉽게 인종차별, 성차별 등 많은 차별들이 사회 속에서 도래하고 있음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우리가 찾지 못하고 있던 또 하나의 차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청년과 청소년들 사이에 깊게 뿌리 내린 차별입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그 차별을 담아낸 책,“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을 소개합니다. <사진1>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이 책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회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인 이십대의 모순적인 모습, 그리고 이 부당한 구조를 지지하는 모습을 말입니다. 이 책에서는 자기계발서가 오직 취업을 위한 하나의 스펙이 된 것, 수능점수에 따른 또래에 대한 당당한 무시, 배려, 그리고 (현재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는 수능점수가) 현재에 대한 평가로 도래하는 것, 대학서열에 대한 집착 등을 그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긍정과 희망을 주기‘만’하는 자기계발서와 우리 사회를 비판하고 사회의 공정성을 해결책으로 제시합니다. 기회, 과정, 결과가 모두 공정한 사회를 말입니다. 진짜 우리의 모습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의 청년들과 청소년들의 일상에 무수한 차별들이 자리 잡고 있음에 충격 받았습니다. 차별이라는 차별엔 무조건 반대를 외치던 자신에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차별이 결코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에도 깊숙하게 힘을 행사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고, 마냥 내가 차별을 반대하고 있지 않았음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읽으면서 와 닿았던 부분들이 있다면, 우월주의, 과잠, 자기계발,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우월주의 이 책에서는 한 학생을 통해 우월주의를 비유합니다. 명문대에 다니는 0군은 교회활동에서 다른 학생들이 ‘상처’받을 까봐 대학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또한 다른 청년은 또래가 지방대라는 이유만으로 개인 능력부터 일상까지 깎아 내립니다. 이 모습을 통해 필자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우월주의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공부를 조금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안타깝다”라는 말을 쓰거나 친구의 사소한 문제까지 성적과 연결시켜 판단하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과잠 서강대에 다니는 0양은 길거리에서 S가 붙은 과잠(대학교 학과 야구잠바)을 보면 무조건 어떤 대학인지 알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만약 서울대라면 한숨을, 성결대라면 안도의 숨을 내뱉습니다. 또한 요즘 들어 명문대 과잠의 유행을 이 책에서는 언급합니다. 사실 필자는 대학교에 대한 로망 중 하나로 과잠이 자리 잡을 정도로 학력위계질서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이 과잠이 단순히 학력경쟁에서 당당하게 성공을 거둔 ‘대학생’이라는 증표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고 남을 깎아내리는 또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잠뿐만 아니라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나보다 공부를 잘하거나 특목고에 다니는 또래를 보면 내 자신이 위축되지만 우리학교보다 공부를 못한다고 알려진 학교에 다니는 또래를 보면 오히려 당당해지는 ‘나’를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자기계발의 의미 대학생들에게 자기계발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면 답은 당연하게 자격증이나 봉사활동 시간, 대외 활동으로 마무리 됩니다. 이처럼 자기계발의 의미가 단순히 자신의 진정한 발전보다는 오직 기업에서 바라는 하나의 취업 자원으로 바뀌어가고 있었습니다. 필자 또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당연하게 자기계발을 스펙으로 여길 정도로 그 단어의 의미보다는 사회에 맞추어가고 있었습니다. 취업을 하지 못하면 온전히 자신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자기계발서의 문제 또한 자각하지 못했고, 입시제도의 레이서로서 필자는 자기계발을 대회 수상 목록쯤으로나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자기계발을 하나의 자원으로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심각성을 되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청년들과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많은 차별들이 존재했습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우리들’의 차별을 말입니다. ‘우리들’의 차별이기에 더욱 느끼기 힘들었던 차별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차별들에는 반대했던 우리가 알고 보면 이 부당한 구조를 적극 지지하는, 차별 찬성자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찬성자였다고 낙담하기는 이릅니다. 우리 스스로 이 차별을 반대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또한 많은 차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업화 이전에는 크게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당연했던 여성 무선거권에 ‘차별’이름표를 붙임으로써 여성차별이 문제로 대두되고, ‘살’색 색연필에 또한 이름표를 붙이면서 인종차별이 사회 문제로 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차별들이 존재했지만 하나 둘 작은 자각에서부터 차별은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차별에 ‘차별’이름표를 붙여줌으로서 진정으로 공정한 세상, 각자의 능력이 존중받는 세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MOO독자 여러분도 먼저 우리 속의 차별을 돌아보는 것부터 차별에 반대해보길 기대합니다. 15기 도은영 기자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ㅣ사진이 있는 기사는 http://blog.naver.com/incheonmoo/220431737938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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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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