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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 여행

제주도 힐링여행2)-역사가 담긴 제주도

작성자
도은영
작성일
2015-05-25
MOO 독자들은 교과서에서 배우는 역사가 공감가지 않을 때, 그리고 프린트 된 유적지에 큰 감명을 받지 못할 때가 있었는가? 역사가 지루하고 비공감적인 여러분의 생각을 뒤바꿀 이곳을 소개한다. 바로, 고려시대 삼별초의 항몽 역사가 담긴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

<사진 1>

1편, <자연과 하나가 된다> 편에 이어 2편에서는 제주도에 담긴 역사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아름다운 휴양지라는 수식어 말고도 제주도에겐 사실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제주 4‘3사건, 일제강점기 징용의 흔적, 그리고 오늘 소개할 삼별초의 항몽 역사까지. 사실 제주도는 관광지라는 이름보다는 역사박물관에 더 가까울 정도로 그동안 우리는 제주도의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교과서식에서 벗어나 직접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를 알아보겠다.

*‘항몽’이란?
: 항몽이란 13세기 당시 고려시대에 침입한 몽골에 대항한다는 의미이다.

항몽 유적지의 이야기

몽골의 침입을 피해 고려는 수도를 강화도를 옮기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정은 다시 수도를 개경으로 돌아가는, 출륙환도를 시행한다. 이에 대몽 항전에 앞선 삼별초는 독립적으로 항전을 계속해나가고 진도로 기지를 옮겨 저항하였다. 그러나 진도에서마저 몽골군 그리고 고려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고 최종적으로 탐라(지금의 제주도)에서 김통정의 아래에 항쟁을 계속해나간다. 김통정 장군의 기지가 바로 이 곳, 항몽 유적지이다.

<사진 2>

그러나 여몽연합군에 의해 이곳 내성이 함락되고 당시 기지에 있던 1300여 명의 여자와 아이가 포로가 된다. 이때 밖에 나가있던 김통정 장군과 70여 명의 군사들은 한라산에 숨지만 이내 곧 자결을 선택한다. 그때 자결한 김통정 장군의 피가 한라산의 한 오름을 적셨다고 하여 아직도 제주도 사람들은 그 오름을 붉은오름이라 칭한다고 한다.

왜 항파두리가 항몽 유적지가 되었을까?

항몽 유적지인 이곳은 계곡이 주위에 둘러싸고 높은 등지로 (적이 오는지 살필 수 있는 등) 적 방어에 유리했다. 또한 30만 여평의 비옥한 토지, 그리고 화산섬이어서 물 사용에 불리한 일반적 제주도 지리적 특성과 달리 물이 고이는 이곳의 특성에 의해 생활하기에 편리했다.

항몽 유적지에서는

항몽 유적지에 가면 당시 터를 발굴해 놓은 모습, 몽골에 맞서 싸운 이들을 기리는 분향소,
그리고 항몽 유적지 박물관을 볼 수가 있다.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다고 느끼는 역사가 제주도에 남겨진 진정한 그들의 체취와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MOO 독자들도 당시 삼별초의 호국정신을 보여주는 이곳과 같이 역사의 향기를 따라가며 선조들의 나라를 위한 붉은 심장을 직접 배워나가는 건 어떨까.

사진출처: 직접 촬영
15기 도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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