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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 여행

셜록 : 유령신부의 영화와는 다른 역사적 사실

작성자
김희선
작성일
2016-01-19
셜록 : 유령신부의 영화와는 다른 역사적 사실

우리는 평소 영화를 보면서 역사적 배경을 많이 볼 수 있다. 지난 2일 국내에서 개봉한 셜록 : 유령신부에게서도 영국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 인권 참정권 운동에 대한 부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속의 사건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인 사실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셜록 : 유령신부의 사건과는 다른 역사적인 사실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사진1)


먼저 영화에 나오는 비밀결사 단은 후드를 뒤집어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절대 후드를 뒤집어쓰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 참정권 운동가 중 자신의 모든 생애를 운동에 받쳤던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20세기 초 넓은 챙 모자 스타일을 뽐낸 여성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로 볼 수 있는 점은 셜록 : 유령신부에서 나오는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남자들에게 복수하는 정도의 모습으로 사건이 진행되었지만, 실제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공적인 행동으로 운동을 펼쳤다.

(사진2)


대표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가였던 에밀리 데이비슨(1872~1913)은 엡섬다운스의 더비경마장에 뛰어들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여성 참정권을 요구했다. 그녀는 달려오는 말 앞으로 뛰어들어 말발굽에 밟혀 쓰러져 결국 머리에 크게 다친 채 4일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사건뿐만 아니라 그녀는 시위 도중 체포되기도 하였으며, 정치인의 저택을 습격하기도 했다. 또한,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하다가 계단에서 뛰어내려 자살 기도를 한 적도 있을 만큼 여성 참정권을 위해 열렬한 운동을 하였다. 그녀의 죽음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은 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그녀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평등의 권리를 찾기 위해 오랫동안 많은 탄압과 비난을 받았지만, 1918년 영국 정부는 30세 이상, 1928년에는 21세 이상 모든 여성에게 투표권을 인정했다.

(사진3)


에멀린 팽크허스트도 대표적인 여성참정권 운동가이다. 에멀린 팽크허스트(1858~1928)는 남편인 리처드와 함께 여성참정권연맹을 창설하고 남편이 죽은 후에도 자신의 세 딸과 함께 여성 참정권 획득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횃불 행진과 같은 시위를 주도했으며, 12차례 단식투쟁도 하였다. 특히 1903년 여성 사회정치 동맹(WSPU)을 설립하여 운동을 활동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생애를 바쳐온 운동이 이루어낸 개정법이 시행되기 한 달 전 목숨을 거두었다. 그 후 그녀의 운동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아 영국 의사당 옆에 그녀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처럼 19세기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남편에게 복수하는 운동가들이 아닌 그림을 훼손하거나, 단식투쟁, 건물에 자신을 묶는 등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바쳐 운동을 진행해 온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후로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여성 인권에 대한 운동을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셜록 : 유령신부의 여성인권운동은 역사적인 사실과는 달랐지만, 영화를 본 뒤에 여성인권운동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셜록 : 유령신부뿐만 아니라 다른 역사적 영화에서도 실제와는 다른 역사적 사실들을 볼 때가 많다. 영화를 볼 때 모든 것이 100%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하고, 다시 한 번 역사적 사건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가지는 마음이 필요하다.


사진출처 - http://goldencrow1.blog.me/220586750950
- 구글이미지
16기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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