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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

1910년 8월 29일, 이 날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작성자
이유진
1910년 8월 29일, 이 날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1910년 8월 29일이 어떤 날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을사조약을 알아야 합니다. 을사늑약의 배경을 알아보면 1904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납니다. 바로 러일 전쟁인데요. 우리나라의 주도권을 결정하기 위해서 두 나라가 전쟁을 일으킨 겁니다. 이 전쟁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였고, 당시 힘이 없던 우리나라는 그 두 나라의 싸움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일본은 세께의 열강으로 도약하였고, 우리나라는 강제로 쳐들어온 일본의 위협 앞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마음대로 한일 의정서를 맺고 다른 나라로부터 대한 제국을 지켜준다는 핑계로 우리나라에 군대를 주둔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고문관을 일본인으로 두어 대한 제국의 내정을 간섭하게 되면서 일본의 고문정치가 시작됩니다. 또한 영국과 프랑스 같은 열강들에게 대한 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기 위하여 흥정을 하는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즉,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와의 포츠머스 조약을 비롯해 여러 나라들과 조약을 맺으면서 다른 열강들에게 대한 제국의 독점 지배권을 인정받게 됩니다.

인정을 받은 후, 일본은 강압적으로 대한 제국을 침략하기 시작했습니다. 1905년, 을사오적은 고종 황제의 승인이 나오지 않자 국가적으로 사용되는 도장을 가져와 일본의 강압적인 을사늑약에 동의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우리나라는 결국 외교권을 박탈당하게 됩니다. 즉, 대한 제국은 나라가 아니게 된 것입니다.

고종 황제는 헤이그 특사를 파견해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였지만, 당시 국제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고종 황제도 강제 퇴위를 당하죠. 이후 일본은 통감의 권한을 확대하고 각 부서의 차관에 일본인을 임명하여서 우리나라의 정치를 일본인이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1907년에 일본은 보안법, 신문지법으로 인해 언론까지 탄압받았으며 1909년에는 사법권을 앗아가면서 자신들의 세력 기반을 다져 나갔습니다. 결국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과 함께 대한 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8월 29일은 나라가 치욕을 당했다고 하여서 국치일이라고 부릅니다.

이후 우리는 35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게 됩니다. 토지와 자원은 수탈당하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은 탄압받았으며 많은 남성들은 징병으로 끌려가고 많은 여성들이 위안부에 희생을 당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이 광복절이라는 사실은 남녀노소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1910년 8월 29일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날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상태로 지나가기 일쑤인데요. 우리는 일본의 만행을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경술국치도 우리가 알아야하는 우리나라의 한 역사임을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사진출처 : 구글이미지
16기 이유진 기자
작성일
2016-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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