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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

화려한 색채에 폭 담겨보자

작성자
주가은
인상파 화가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반 고흐라는 유명한 이름 덕분일 텐데, 오늘은 반 고흐가 아닌 다른 인상파 화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반 고흐를 제외하고는 인상파 화가들 중에 생각나는 이름이 없을 지도 모른다. 몇 개의 단서를 주자면, 먼저 기사 제목에서도 드러나지만 화려한 색채를 많이 사용한 화가였다. 두 번째로는 고흐와 함께 아를에서 같이 산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문명세계를 싫어해 미개한 원시시대를 찬양했던 화가였다는 사실, 타히티와 사랑에 빠진 화가였다는 사실을 전해줄 수 있을 듯하다. 미술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바로 맞췄을 지도 모른다. 바로 폴 고갱이다.

폴 고갱은 강렬한 색채로 보는 이의 눈길을 끄는, 매력적인 그림을 그린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이다. 40대 중반에 병에 걸리고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산업문명에 질릴 대로 질린 고갱은 문명세계에서 벗어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적합한 장소로 찾은 곳은 바로 타히티 섬. 이곳에서 그는 원근법을 모두 무시한, 평면적이고 단순한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타히티 섬 원주민들의 강렬한 색채를 모두 담으려는 듯 원색으로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순수한 원주민들의 모습에 하루하루 감동을 느끼며, 병들어간 육체를 되살려간다. 하지만 유럽에서 그의 그림은 계속 팔리지 않았고 그는 더더욱 병에 찌들어간다. 결국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불행한 말년 속 대작<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탄생시킨다. 고갱 자신이 보았을 때 가장 잘 그린 그림이라고 평가했던 그림이었으며, 실제로도 우리에게 가장 큰 감동을 안겨 주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문명과 멀리 떨어져 흡사 자연과의 물아일체를 주장하던 우리나라 옛 시인들과도 같이 자연, 특히 타히티의 마타이에아라는 섬에서 폭 빠져 지내던 고갱은 결국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의 작품적인 특징에 덧붙여 한가지 더 말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바로 고흐와의 동거 이야기인데, 고흐와의 동거는 고흐에게도, 고갱 자신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고흐는 아를에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로망이 있어 몇몇 화가들에게 그에 관한 편지를 보냈으나 고갱만이 응답해 아를로 왔다. 이후 그 유명한 아를의 노란 집에서 약 두 달간의 동거는 갈등만을 빚었고, 안 좋은 결과를 맞게 된다. 당시 고갱은 미술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으나 고흐의 그림은 살아생전 1점밖에 팔리지 않았을 정도로 인정받지 못했었는데, 고갱은 고흐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흐의 작품을 비판했었다. 고흐를 무시하는 고갱의 행동은 계속 되었고 서로 간의 작품세계에 관한 갈등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결국 고흐의 자화상에서 고흐의 귀와 그림에서의 귀가 다르다는 고갱의 말에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고흐의 그러한 행동에 질린 고갱은 그 길로 노란 집을 나가 타히티 섬으로 향하게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고흐의 삶은 독자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요양원에서 자살로 마감된다. 두 사람의 삶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하지만 그림에 관해서는 열정이 있었는지 고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그림에 관한 고갱과 고흐의 편지는 이어졌다고 한다.

타히티 섬에서 지내면서 생긴 고갱의 그림에서의 특징과 고흐와의 동거와 관련한 고갱의 삶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고갱에 대해 알아보면서, 미술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상주의에 대한 이해를 높였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17기 주가은 기자
작성일
2017-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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