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떠난 사람들

한민족 이민의 역사는 19세기 중엽 백성들의 궁핍한 삶과 함께 전개됐다. 조선의 서북지방은 대흉년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고, 1876년 체결된 조일수호조규는 일본으로의 곡물 대량 반출을 가능하게 하여 곡물 사정을 어렵게 했다.

이러한 가운데 부패한 관리들의 조세 수탈이 극심해져 백성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서구 열강들의 이권 개입과 함께 임오군란·갑신정변·청일전쟁 등 사회·정치적으로도 혼란이 가중됐다. 이처럼 가난한 삶과 불안한 정세는 백성들을 언 강을 건너 간도와 연해주로, 넓은 바다를 건너 하와이와 멕시코로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게 했다.

끝없는 수평선 너머 계속되는 바다를 건너다

1902년 12월 22일, 비나 눈은 오지 않는 영하 4.5도의 날씨였다. 아침 8시 동서개발회사에 집결한 121명 이민자들은 오전 10시 인천 해관에 도착해 출국심사를 마치고, 작은 배에 나누어 타고 월미도 해상에 정박 중인 겐카이마루玄海丸에 올라 오후 2시 하와이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목포와 부산을 경유하는 이틀간의 항해 끝에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한 이민자들은 신체검사로 탈락한 19명을 제외한 102명만이 미국 상선 갤릭호를 타고 12월 29일 나가사키를 출발해 고베와 요코하마를 거쳐 수평선 너머에도 계속 이어지는 바다를 건너 1903년 1월 13일 호놀룰루항에 도착했다. 선상에서의 검사에서 16명이 탈락해 총 86명이 미국에 입국해 오아후섬 와이알루아 농장의 모쿨레이아 캠프에서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인 노동자들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인 노동자들
풍류관(강당) - 2층 이미지
에바농장의 한인 공동 빨래터 모습
태평양을 건넌 사람들

연해주와 간도로의 이주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함이 목적이었다면, 태평양을 건넌 하와이와 멕시코 이민은 노동력을 목적으로 농장주들의 요청에 의해 모집된 이민이었다.

하와이 이민은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윤허에 의해 합법적으로 이뤄져 한인들과 모국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멕시코 이민은 노예무역에서 발전한 형태의 불법적인 계약노동 이민으로 모국과 단절됐다.

하지만 하와이와 멕시코의 한인사회 모두 빈한한 생활 속에서도 모국의 주권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 자료 및 이미지 출처 : 한국이민사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