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韩民国驻上海临时政府采访记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취재기
撰文:南夏恩(仁荷大学校报采访记者)
글. 남하은 인하대학신문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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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年8月9日是一个意义非凡的日子。因为这一天我在中国独自度过了自己的生日。同时,这一年也是大韩民国迎来光复80周年的一年。想到这一点,作为仁荷大学校报的记者,我决定要写一篇纪念光复80周年的特别专题报道。我立刻订了飞往上海的机票。记事本、圆珠笔、换洗衣物还有相机,一切准备就绪。在期待与紧张交织的心情中,我踏上了前往中国的旅程。
其实,这并不是我第一次来上海。去年,我曾通过仁荷大学海外地区研究项目,在上海东华大学度过了寒假。然而,此行是独自出行采访,所以需要更大的勇气。从订机票到订住宿,每一个环节都不轻松,但作为仁荷大学校报的记者,我非常期待这趟海外之旅,因为这将是一次意义深远的采访。
登上飞机已是午夜时分,抵达上海浦东机场时已是凌晨2点多。凌晨的空气闷热潮湿。乘坐出租车到达武康路附近的住所后,我立刻躺倒在床上。乘坐深夜航班,疲惫感如潮水般袭来。想着第二天一早就要开始的采访日程,我渐渐进入了梦乡。
早上10点,我乘坐地铁13号线在新天地站下车。太阳炙烤着柏油路,彰显着它的存在感。来到武康路街头,映入眼帘的是随处可见的欧式建筑。虽然景色有些陌生,但街道的喧嚣、咖啡馆的音乐和人们的交谈声交织在一起,营造出了这座城市特有的节奏。怀着记录城市沉淀时光的想法,我一边漫步街头,一边不停地按下相机快门。
当快要汗流浃背之际,我加快脚步,来到了大韩民国临时政府旧址。大韩民国临时政府是1919年在上海建立的独立运动中心。在宪法上,大韩民国继承了临时政府的法统,因此这个空间具有极高的象征意义。临时政府在13年间里,多次在法租界内搬迁,目前的旧址位于宝庆路。在这个从1926年起使用了约6年的办公处里,金九主席组织了韩人爱国团,团员尹奉吉义士通过虹口公园义举展开了抗日斗争。
怀着对金九、尹奉吉等独立运动家牺牲的缅怀与崇敬之情,我以肃穆的心情走进了旧址内部。内部由1楼的会议室和厨房、2楼的主席办公室和要员办公室、3楼的宿舍组成。面对办公室内重现的金九先生的模样,我不禁肃然起敬。虽然是真人大小的铜像,但他的目光似乎正注视着后人。转过头,看着墙上悬挂的太极旗,我双手合十。想到在这个狭小的空间里,曾经交织着无数的苦恼与决断,心情自然变得沉重起来。
虽然旧址内部限制拍照,但通过这次海外采访,我得以回望那些在异国他乡为国家独立而献身的人们波澜壮阔的一生。望着外滩闪烁着华丽灯光的夜景,我回想起了先辈们为了夺回被剥夺的祖国而迈出的沉重脚步。那些在异国他乡逝去的青年们,他们的岁月仿佛在江面上摇曳。我相信,当2026年8月15日,即光复第81周年到来之时,这次采访的记忆也会在我的脑海中变得更加鲜活。

2025년 8월 9일은 의미 있는 날이었다. 중국에서 홀로 나의 생일을 맞았기 때문이다. 2025년은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은 지 8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인하대학신문 기자로서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기획기사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곧바로 상하이행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수첩과 볼펜, 여벌 옷과 카메라까지 모든 준비를 마쳤다. 설렘과 긴장 속에서 중국으로 향했다.
사실 상하이는 처음이 아니었다. 전년도 인하대학교 해외지역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상하이 동화대학교에서 겨울방학을 보낸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혼자 떠나는 취재였기에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항공권 예매부터 숙소 예약까지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인하대학신문 기자로서 뜻깊은 해외 취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자정 무렵 비행기를 타고 새벽 2시가 넘어 상하이 푸동공항에 도착했다. 새벽 공기는 후텁지근했다. 택시를 타고 우캉루 인근 숙소에 도착한 뒤 곧바로 침대에 몸을 눕혔다. 심야 비행의 피로가 몰려왔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부터 시작될 취재 일정을 떠올리며 잠에 들었다.
아침 10시, 지하철 13호선을 타고 신천지역(新天地站)에서 하차했다. 태양은 아스팔트를 달구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캉루 거리에 도착하자 곳곳에 늘어선 유럽풍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소 낯선 풍경이었지만 거리의 소음과 카페 음악, 사람들의 대화가 어우러져 도시 특유의 리듬을 만들어냈다. 도시가 쌓아온 시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에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가며 거리를 걸었다.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흐를 무렵, 걸음을 재촉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에 도착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상하이에 수립된 독립운동의 중심지다. 헌법상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국가이기에 이 공간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임시정부는 13년 동안 프랑스 조계지 내에서 거처를 옮겨 다녔으며, 현재 청사는 보경로에 위치해 있다. 1926년부터 약 6년간 사용된 이 청사에서 김구 주석은 한인애국단을 조직했고, 단원 윤봉길 의사는 홍커우 공원 의거를 통해 항일 투쟁을 전개했다.
김구와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떠올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청사 내부에 들어섰다. 내부는 1층 회의실과 주방, 2층 주석 집무실과 요인 사무실, 3층 숙소로 구성돼 있었다. 집무실에 재현된 김구 선생의 모습을 마주하자 숙연해졌다. 실물 크기의 동상이었지만 그의 시선은 마치 후손들을 향하고 있는 듯했다.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태극기를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았다. 이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고민과 결단이 오갔을 시간을 떠올리니 절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비록 청사 내부 촬영은 제한됐지만, 이번 해외 취재를 통해 타국에서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이들의 삶을 되새길 수 있었다. 화려한 불빛이 반짝이는 와이탄의 야경을 바라보며,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자 했던 선조들의 발걸음을 떠올렸다. 낯선 땅에서 스러져간 청년들의 시간이 강물 위로 어른거리는 듯했다. 2026년 8월 15일, 광복 제81주년이 다가올 때면 이번 취재의 기억 역시 더욱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