那时的仁川,以及华侨的记忆 - 王潤齡女士一家
그 시절 인천, 그리고 화교의 기억 - 왕윤령 님 가족
相比大型超市,更熟悉街坊市场的时代。那个仿佛永远在仁川现代市场的小巷里穿梭的活泼女学生,不知不觉间已经年过六旬。从父母那里听来的关于自己出生的故事,到与朋友们一起走过的上学路,再到现在已经大变样的中华街。她的记忆中充满了与仁川共同积累的回忆。
作为华侨第三代出生并与仁川一同成长的王潤齡女士。顺着她的记忆,人们不仅能看到一个人的人生,还能遇见仁川不断变迁的面貌。让我们跟随她,去聆听她记忆中的仁川与家族的故事。
커다란 대형마트보다 동네 시장이 익숙하던 시절. 언제까지고 인천 현대시장 골목 구석구석을 쏘다닐 것 같던 발랄한 학생은 어느새 예순을 훌쩍 넘겼다. 부모님께 전해 들은 자신의 탄생 이야기부터 친구들과 함께 걸었던 등굣길, 이제는 많이 변한 차이나타운 거리까지. 그녀의 기억 속에는 인천과 함께 쌓아온 추억이 가득하다.
화교 3세대로 태어나 인천과 함께 성장해 온 왕윤령 씨. 그녀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 변화해 온 인천의 모습까지 마주하게 된다. 그녀가 기억하는 인천과 가족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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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川华侨协会主要负责协助办理护照及为华侨提供支援等工作。
인천화교협회에서 여권 발급 및 화교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我的出生地,仁川
나의 출생지, 인천
充满着质朴却温馨气息的20世纪60年代仁川中华街。在被称为“皇帝台阶”附近的一户人家里,传来了一阵响亮的婴儿啼哭声。仁川华侨协会理事王潤齡是土生土长的仁川人。出生后她曾短暂在江原道春川和首尔生活过,但在小学六年级左右又回到了仁川。此后,直到从仁川中山华侨学校毕业,她的学生时代都是在仁川度过的。
那时,对她来说,上学的路就是与朋友们积累回忆的时光。每天早上,她都会和住在松林洞的朋友一起步行上学。“华侨学校的校服颜色有些特别。夏季校服是绿色的,所以非常显眼。周围的人也会盯着看,但那时候哪里会在意这些呢。只觉得一切都很有趣,很幸福。”
下雨天时,她们也会穿过自由公园,从学校的后门去上学。公园里有很多大蚯蚓,对于小孩子们来说,连这也成了一件惹人发笑的事情。下课后,大家三三两两地聚在学校前面的小卖铺前。对华侨学生来说,嗑葵花籽是再自然不过的日常。
“对我们来说,嗑葵花籽是理所当然的事。但长大后才发现,这在韩国并不是常见的零食。觉得既新奇又有趣。”回想起来,那些看似没什么特别的每一天,反而成为了最清晰的记忆。
투박하지만 정겨운 분위기가 가득했던 1960년대 인천 차이나타운. ‘황제의 계단’이라 불리는 계단 근처 한 집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왕윤령 인천화교협회 이사는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인천 토박이다. 출생 이후 잠시 강원도 춘천과 서울에서 살기도 했지만,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다. 이후 인천중산화교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인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그녀에게 학교로 향하는 길은 곧 친구들과의 추억이 쌓이는 시간이었다. 송림동에 살던 친구와 함께 매일 아침 걸어서 학교에 갔다. “화교 학교 교복 색이 좀 독특했어요. 여름 교복이 초록색이어서 눈에 엄청 띄었죠. 사람들이 주변에서 쳐다보기도 했는데, 그땐 그게 뭐 신경이 쓰이나요. 마냥 다 재밌고, 행복했었던 것 같아요.”
비 오는 날이면 자유공원을 지나 학교 뒷문으로 등교하기도 했다. 공원에는 커다란 지렁이도 많았는데, 어린 아이들에게는 그마저도 웃음이 나는 일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 앞 가게 앞에 삼삼오오 모였다. 화교 학생들에게 해바라기씨를 까먹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저희는 해바라기씨 까먹는 게 너무 당연했어요. 근데 성인이 되고 보니,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간식이더라고요. 신기하고 재밌었죠.” 돌이켜보면 특별할 것 없었던 하루하루가 오히려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一张包含两个孩子童年时光的家庭照片
두 자녀의 어린 시절 모습이 담긴 가족사진
少女时期的王潤齡女士
처녀 시절 왕윤령 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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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族的记忆
가족의 기억
与丈夫在婚礼上的合影
남편과의 결혼식 당시 사진
曾经四世同堂的她,在被问及家族故事时,毫不犹豫地首先提起了外婆的故事。从小一起生活的外婆,在她的青春期时两人经常发生摩擦。但随着时光流逝,现在回想起来,比起争吵的记忆,更多的是温暖的瞬间。
经营过餐馆的外婆尤其喜欢鱼类料理,每次吃饭时都会用自己的独特方式烹饪鱼。“外婆胃肠不好,所以每次吃饭都会喝一杯高粱酒。她也很喜欢吃鱼,会用热油爆香大蒜,然后加入酱油、白糖和少许水来炖煮,真的非常美味。”外婆做的鱼的美味,即使时间流逝,至今依然留在王潤齡女士的记忆中。每当亲自做鱼时,她都会自然而然地想起外婆。
外婆的巧手也完好地传承给了家人。外婆的针线活非常好,为了度过寒冬,她会亲自织围巾,还会给大家做衣服。王潤齡女士还记得小时候外婆做纽扣、踩缝纫机的样子。“韩国的冬天很冷嘛。为了让家人都能穿上,外婆都是一件一件亲手做出来的。”
4대가 한집에 살았던 그녀는 가족 이야기를 묻자 머뭇거림 없이 가장 먼저 외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살았던 외할머니와는 사춘기 시절 많이 부딪히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싸웠던 기억보다 따뜻했던 순간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식당을 운영했던 외할머니는 특히 생선 요리를 좋아해 식사 때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선을 요리하곤 했다. “할머니는 위장이 안 좋으셔서 식사 때마다 고량주를 한 잔씩 드셨어요. 그리고 생선도 좋아하셨는데, 기름을 세게 해서 마늘을 넣고 간장, 설탕, 물을 조금 넣어 조리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할머니가 해주던 생선 요리의 맛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왕윤령 씨의 기억에 남아 있다. 직접 생선 요리를 할 때면 자연스럽게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외할머니의 손재주도 가족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외할머니는 바느질 솜씨가 매우 좋으셨는데,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직접 목도리를 만들기도 하고, 옷을 지어주기도 했다. 왕윤령 씨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단추를 만들고 미싱을 돌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한국이 춥잖아요. 가족들이 입을 수 있도록 하나하나 만들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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异国他乡的岁月
타국에서 살아간다는 것
与成年子女共度的温馨时光
장성한 자녀들과 오붓한 한때
在王潤齡女士度过童年的20世纪70至80年代,社会对华侨的了解和理解比现在要缺乏得多。有些人知道她是华侨后,会以想学中文或想了解华侨为由接近她,但这有时也会让她产生“别人只在需要的时候才来找华侨”的感觉。
然而,随着岁月的流逝,社会看待华侨的目光也在逐渐改变。最近,越来越多的人开始关注、研究或采访华侨的历史和文化。王潤齡女士也在仁川华侨协会工作期间,对自己亲历的华侨历史进行了重新学习。“现在协会也在为宣传华侨、发出华侨的声音而付出很多努力。特别是仁川华侨协会副会长朱熙丰先生等人,真的做出了很大贡献。不仅在媒体上亮相,相关的研究也越来越多了。”
虽然出生在仁川,共同享有仁川的历史,并与仁川一同成长,但华侨们长期以来在韩国社会中一直以“外国人”的身份生活。在这个过程中,他们也经历了不少日常生活中的不便。王潤齡女士在送两个女儿上韩国学校时也曾遇到过困难。甚至在注册学校网站主页时,也曾因是外国人身份而无法注册。
“当时很担心孩子们会受到伤害。她们有时也会想隐藏自己是外国人的事实。每当这个时候,我都会安慰她们说‘这并不是不行,只是过程稍微繁琐一点而已’,感觉在这方面费了很多心思。”
왕윤령 씨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1970~80년대만 해도 화교에 대한 정보와 이해는 지금보다 훨씬 부족했다. 그녀가 화교인 것을 알면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거나, 화교에 대해 알고 싶다는 이유로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필요한 순간에만 화교를 찾는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화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조금씩 달라졌다. 최근에는 화교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거나 취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왕윤령 씨 역시 인천화교협회에서 일하며 자신이 살아온 화교의 역사에 대해 새롭게 공부하게 됐다. “지금은 협회도 화교에 대해 알리고,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 많이 하고 있어요. 특히 주희풍 인천화교협회 부회장님 같은 분이 정말 많이 노력하셨죠. 언론에도 나오고, 연구도 많아지고 있거든요.”
인천에서 태어나고, 인천의 역사를 함께 누리고, 인천과 같이 성장해왔지만, 화교들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일상적인 불편을 겪기도 했다. 왕윤령 씨 역시 두 딸을 한국 학교에 보내며 어려움을 경험했다. 학교 홈페이지에 가입하려 해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가입이 되지 않는 일이 있었다.
“아이들이 상처받는 게 걱정이었죠. 자기가 외국인이라는 걸 숨기고 싶어 하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안 되는 게 아니라 조금 걸리는 거다’라고 위로하면서 많이 신경 썼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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珍贵的日常
소중한 일상
仁川华侨协会主要负责协助办理护照及为华侨提供支援等工作。
인천화교협회에서 여권 발급 및 화교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对于目前在仁川华侨协会担任主任的王潤齡女士来说,在仁川度过的每一天既熟悉又珍贵。与华侨学校的同学结为百年之好的她,原本打算不踏入职场,但事情并没有按计划发展。她以中文家教和多文化讲师的身份开始了社会生活,后来在一个好机会下,与仁川华侨协会结下了不解之缘。
“我们华侨毕业后,职业选择的范围并不算很广。能有机会在协会工作,我觉得是运气好。”在协会工作的过程中,她近距离地接触到了华侨的历史以及华侨们面临的各种困难。她说,通过这些经历,自己对自己所属的华侨社会有了更深的理解。
结束协会的工作后,她会去遛狗、做家务,或者跳尊巴舞来度过时光。对于与在韩国结识的朋友们相伴、过着平凡日常的她来说,仁川既是生活的家园,也是充满回忆的空间。在生活于仁川的王潤齡女士的记忆深处,层层叠叠地沉淀着关于家族、华侨以及仁川的岁月。
현재 인천화교협회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왕윤령 씨에게 인천에서 보내는 일상은 익숙함과 소중함이다. 화교학교 동창과 백년가약을 맺은 그녀는 당초 사회생활을 하지 않을 계획이었지만,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다. 중국어 과외와 다문화 강사 등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좋은 기회로 인천화교협회와도 인연을 맺게 됐다.
“우리 화교들은 졸업하면 직장 선택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았어요. 협회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건 운이 따른 것 같아요.” 협회에서 일하며 화교의 역사와 함께 화교들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도 가까이서 마주하게 됐다. 그 경험들을 통해 자신이 속한 화교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
협회 일을 마친 후에는 강아지와 산책하고, 집안일을 하거나 줌바댄스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리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인천은 삶의 터전이자 추억의 공간이다. 인천에서 살아온 왕윤령 씨의 기억 속에는 가족과 화교, 그리고 인천의 시간이 함께 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