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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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특집 1- 새로운 가족, 반려동물
너와 함께 있으면 집안에 언제나 생기가 돈다. 천진무구한 새카맣고 동그란 눈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말랑말랑해진다. 쿠션을 물어뜯어 솜이 터져 나와도, 아무 데나 볼일을 봐도 예쁘기만 하다. 슬플 땐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 너.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반려동물은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집안의 귀여운 막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행복한 반려동물 가족을 찾아갔다.글 최은정 본지 편집위원│사진 유승현 포토 디렉터반려견 겨울이와 진미정 씨, 서로에게 가장 큰 위로이고 선물이다.하늘나라에서 보내준 선물, 유기견 겨울이지난 겨울 진미정(51) 씨 가족과 16년을 동고동락한 ‘미루’는 하늘의 별이 됐다. 그날 밤, 부평구 동물보호센터 짱구네동물병원에는 새끼 진돗개가 길에서 떨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며칠을 울기만하다 원장님 전화를 받고 동물병원에 겨울이를 보러 갔는데 미루랑 꼭 닮았더라고요. 보자마자 ‘아, 내 아이구나’ 느낌이 왔어요.”진 씨 가족과 겨울이는 서로에게 새로운 가족이 돼 가족을 잃은 슬픔을 어루만져줬다. 재롱도 곧잘 부리고 말귀도 척척 알아듣는 겨울이 덕분에 적막하던 집에 예전처럼 생기가 돌았다. 2개월 아기 때부터 진 씨 부부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자란 겨울이는 동물판매업소(펫샵)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건강하고 사회성이 좋다. 외모도 제법 늠름하다. “겨울이가 우리집 보물 1호예요. 평생 꽃길만 걷게 해줄 거예요. 길 위의 더 많은 생명이 소중한 가족을 만나 사랑받고 자랐으면 좋겠어요.”짱구네동물병원(부평구 동물보호센터) 주소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356전화번호 032-511-5515뚱이의 ‘해피 하우스’인천서흥
2022-05-03 2022년 5월호 -
스케치에 비친 인천-송도갯벌
‘인천, 그림이 되다.’ 낡은가 하면 새롭고, 평범한가 싶으면서도 특별한. 골목길만 지나도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도시, 인천. 추억이 그리움으로, 때론 일상으로 흐르는 공간이 작가의 화폭에 담겼다. 그 따뜻하고 섬세한 붓 터치를 따라 인천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간다. 이번 호는 사라진 바다를 그리며, 사라질 바다에서 살아가는 ‘먼우금’ 사람들. 그 짠 내 가득한 삶을, 최원숙 화백이 그렸다.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임학현 포토 디렉터송도어촌계2,2020, 혼합 재료, 57.5×42cm물때만 맞으면 밤이고 새벽이고 바다로 달려나가는 삶.먼우금 사람들은 평생 차디찬 바람 맞으며 갯벌에 뒤엉켜 살아왔다.땅에 갇힌바다우리가 아는 송도가 아니다. 개발이 한창인 송도국제도시 6·8공구, 무섭게 내달리는 덤프트럭을 피해 공사장 안으로 들어간다. 척박한 땅을 지나자 눈앞에 수평선이 아득히 펼쳐진다. 지금 발 딛고 선 이 땅도 한때는, 바다였다.오전 9시, 흙먼지를 날리며 트럭이 하나둘 도착한다. 아직, 바다의 들숨과 날숨에 호흡을 맞추며 살아가는 척전어촌계 사람들이다. 물참엔 나룻배질을 하고 잦감이면 걸어다니던, 멀고도 가까운 바다 ‘먼우금’. 미추홀구 용현동에서 연수구 옥련동, 청학동, 동춘동을 아우르는 너른 바닷가 벌판엔 백합이며 모시조개, 바지락, 동죽, 꽃게, 낙지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연평도 게보다 송도 게를 더 높이 쳐주던 시절이었다.박길준(78) 척전어촌계장은 소암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 라마다 송도 호텔이 서 있는 그 자리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 앞까지 파도가 밀려들었다. “황금 바다였어. 그 귀한 백합을 20kg, 30kg씩 거뜬히 캐냈으니까. 1kg당 가격
2022-05-03 2022년 5월호 -
인천 문화재 이야기 ⑰ 교동향교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향교’는 공자孔子 같은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학생들을 가르치던 고려, 조선 시대 국립학교다.우리나라에 처음 향교가 들어선 시기는 1127년(인종5)이다. 강화군 교동면의 ‘교동향교’(인천시 유형문화재 28호)가 그것이다. 중국에서 바닷길로 올 때 처음 거쳐야 하는 곳이 교동도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최초의 향교가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교동향교엔 교동도를 다스린 ‘수군절도사 겸 부사’의 선정비 39기와 서재·동재, 서무·동무, 명륜전, 대성전이 자리한다. 성인들께 제사를 올리는 대성전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가장 큰 대성은 공자이고, 4성은 4대 제자인 안자·증자·자사·맹자를 가리킨다.고려 시대 과거제를 실시하고 학교 제도를 정비하던 향교는 조선 시대 들어 유교 이념의 보급과 중앙집권체제 강화에 앞장선다. 향교가 전국적으로 확대 설치된 시기도 이때다.설립 당시 화개산 북쪽 고구리 향교골에 있던 교동향교는 1741년(영조17) 교동읍이 읍내리로 이전하며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진달래 피는 봄과 감이 열리는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올린다. 전교 1인과 장의 여러 명이 운영하고 있다.
2022-05-02 2022년 5월호 -
문화 줌인-그리운 그 이름…, 죽산 조봉암을 만나다
그리운 그 이름…, 죽산 조봉암을 만나다 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그리움… 인천이 낳은 지도자, 조봉암’ 사진전 전시인천이 낳은 지도자 죽산 조봉암(1899~1959) 사진전이 5월 15일까지 인천시립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그리움… 인천이 낳은 지도자, 조봉암’이란 제목의 이번 사진전에선 195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조봉암 선생이 유세하던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전쟁 종군 기자이던 마거릿 버크화이트가 촬영한 이 희귀 사진들에선 죽산의 강직하고 당당한 풍모가 잘 드러난다. 1958년 진보당 사건 당시 서울특별시경찰국의 수사 과정에서 작성된 죽산의 자필 자공서도 공개한다.강화도 선원면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죽산은 좌·우익 사상을 뛰어넘은 민족지도자였다. 농림부 장관 시절엔 토지개혁을 단행해 농민들에게 살아갈 희망을 안겨주었고, 공산·자본주의를 초월한 평화통일을 주창했다.국민의 지지를 얻어 두 차례 출마한 대통령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자 자유당 정권은 죽산에게 간첩죄를 씌워 사형을 집행한다. 죽산은 사형 집행 전 자신을 찾아온 청곡 윤길중(1916~2001)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어느 땐가 평화통일을 할 날이 올 것이고, 바라고 바라던 밝은 정치와 온 국민이 고루 잘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네. 씨를 뿌린 자가 열매를 거둔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나는 씨를 뿌려놓고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네.” 죽산이 뿌린 씨는 63년이 흐른 2022년 지금, 빛나는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중이다.
2022-05-02 2022년 5월호 -
인천 수영 전통 학교를 찾아서 ㉔ 인천신광초등학교
꿈을 키우고희망을 채우는행복한 학교세상 모든 학교는 귀하다. 그 속에서도 특별한 전통과 저력을 품은 곳이 있다. 학교를 통해 도시를 들여다보는 ‘인천의 학교를 찾아서’. 그 스물네 번째 등굣길을 따라 중구 신흥동으로 발길을 옮긴다. 오후 2시, 하교하는 아이들로 분주한 가운데 운동장에서 담소를 나누는 아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전교 학생회장인 6학년 이혜린(12) 양과 수영부 선수인 6학년 윤효정(12) 양, 4학년 김도현(10) 군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 하교 지도를 하던 박지수(30) 교사까지 합류해 이야기는 점점 무르익어갔다.글 김지은 자유기고가│사진 김범기 자유사진가6학년 윤효정·이혜린 양, 박지수 교사, 4학년 김도현 군(왼쪽부터)30여 년 전통에 빛나는 수영부최근 인천신광초등학교(이하 신광초) 수영부에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제51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인천광역시 대표선수 예선대회에서 윤효정 양이 평영 100m 부문 은메달을 수상한 것. 그동안 코로나19로 대회가 제대로 열리지 못한 상황에서 오랜만에 들려온 쾌거라 더욱 반가웠다.“열심히 훈련한 보람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한 달 후에 열릴 전국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훈련하겠습니다.”윤효정 양은 담담하게 소감을 밝히며 웃음 지었다. 효정 양이 처음 수영을 시작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당시 살이 갑자기 쪄 어떤 운동을 할지 고민하던 중 학교에 수영부가 있다기에 지원했다. 그전까지 한 번도 수영을 배운 적 없었지만 빠르게 적응해 갔고, 배울수록 수영이 좋아지더란다.“일곱 살 때부터 수영을 했어요. 신광초에 입학해 수영부가 있다는 걸 알고 바로 지원했고요. 수영을
2022-05-02 2022년 5월호 -
소소한 인천 -인천 지명 , 인천 소사
새풀에서 샛별로, 효성동계양구에 위치한 효성동은 지명의 유래가 자못 재미있다. 기록에 따르면, 1899년 당시 이곳은 부평군 마장면馬場面 효성리曉星里 지역이었다. 효성리라 불렸던 건, 이 지역은 수원水源이 없는 척박한 곳으로 온통 억새풀만이 무성한 황무지 벌판이라는 뜻의 ‘새풀’이라 불렀는데 발음이 와전되어 ‘새별’에서 ‘샛별’이 되었고, 한자로 기재되면서 ‘효성曉星’이 되었다. 또 다른 해석도 있다. 이 곳은 예로부터 말을 먹이던 ‘새벌(草原)’이었는데, 그 어휘가 변해 ‘새별’에서 ‘샛별’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어감도 좋고 발음도 예쁜 효성이라는 지명으로 굳어졌으니 결론은 아름다운 셈이 아닐지.효성동은 1940년 인천부에 편입되어 일본식 명칭인 서정曙町이 되었고, 광복 이후 1946년에 이르러 다시 옛 이름인 효성을 되찾게 되었다. 1990년에는 효성1동과 효성2동으로 분리되기도 했다. 효성1동의 경우에는 주택과 아파트가 밀집해 있으며, 효성2동은 경인고속도로와 인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산업도로가 관통하고 있어 기업체가 많이 위치한다.제1회 새얼백일장 ⓒ새얼문화재단새얼백일장 ⓒ새얼문화재단인천 소사1986. 05. 31새얼문화재단, 제1회 새얼백일장 개최 (송도 유원지)새얼문화재단은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문화재단으로 1975년 근로자 자녀를 위한 장학회로 출범해 1983년 지역사회와 문화 발전을 위해 새얼문화재단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각계각층의 인사와 시민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며 장학사업, 역사기념사업 등을 진행한다. 그중 새얼백일장은 1986년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재단의 대표 사업으로 꼽힌다. 제1회 대회 당시 141개
2022-05-02 2022년 5월호 -
인천의 아침-우크라이나人 사바찐과 제물포구락부
우크라이나人 사바찐과 제물포구락부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 제물포구락부 실내, 구락부는 ‘클럽’의 일본식 발음이다.자유공원 응봉산 중턱. 봄바람을 타고 연분홍 벚꽃잎이 ‘제물포구락부’ 맨사드 지붕 위로 나풀나풀 내려앉는다. ‘로마시티-제물포구락부에서 떠나는 로마 역사여행.’ 제물포구락부에선 지금 올해 첫 기획전시가 한창이다. 로마가세계로 출발하는 글로벌 도시였다면, 제물포는 근대 조선이 시작된 국제도시였음을 드러내려는 취지라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종교, 교육, 음악과 같은 서양 문물이 제물포로 처음 들어와 서울로 전해졌으므로 ‘인천은 우리나라의로마’라는 관점이다.짙은 밤색 톤 나무로 마감한 실내와 봄 햇살이 들어오는 아치형 창문, 그리고 귀부인의 장식품 같은 천장의 샹들리에. 제물포구락부 건물 내부는 개항기 외교관들의 협의 공간이자 사교 클럽답게 고전적 화려함으로 치장돼 있다. 제물포구락부는 인천 개항과 함께 밀물처럼 들어온 외국인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제물포에 세계 각국의 치외법권 지역인 ‘조계지’를 설정하면서 서구 열강은 공동 이익을 위한 ‘신동공사’란 이름의 회사를 설립한다. 신동공사는 당시 근대건축가로 널리 알려진 우크라이나 출신 사바찐 (Afanasii Ivanovych Seredin-Sabatin, 1860~1921)에게 설계를 의뢰한다. 그렇게 1901년 6월 22일 문을 연 제물포구락부는 외국인들이 술 마시고 당구를 치는 사교 클럽처럼보였지만 실은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뤄진 회의장이었다. (인천학연구원)에 ‘제물포정략’이란 말이 등장할 정도로 당시 조선을 둘러싼 열강들의 이권 다툼은 치열한 것이었다.사바찐
2022-05-02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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